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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02. 2019

8. 의자는 의자다

'의자'에 얽힌 끔찍한 기억이 있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 것이고, 오히려 그런 질문 자체를 의아하게 여길 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법. '의자'에 얽힌 내 가장 끔찍한 기억은 아홉 살 때의 산수 시간으로 시간적 배경이 맞추어진다.


의자에 얽힌 끔찍한 기억


초등 2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은 검은 피부에 비쩍 마르고 머리카락이 벗겨진 악당 이미지의 할아버지였다. 그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다)으로 인해 당시 나는 수많은 밤을 악몽에 시달렸으며 '세상 사는 거 만만치 않다'는 삶의 쓴 맛까지 경험했을 정도였다. 그는 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뜀틀을 넘지 못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철썩철썩 뺨을 때렸고, 부모들에게는 ‘돈봉투’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그 선생님을 매일 같이 봐야 했던 2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암막 커튼이라도 친 듯 어두컴컴한 교실과 해골처럼 마르고 잔인한 눈빛을 가진 그 선생이 암울하게 떠오른다.



압권은 2학년 산수의 필수 코스인 구구단 외우기였다. 구구단을 외워 오라는 숙제의 최종 점검 시간, 선생은 일단 반 아이들 모두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게 하고, 머리 위로 자기 ‘의자를 들고’ 있게 했다! 그러고는 외운 사람부터 차례로 앞에 나가 2단부터 9단까지 외워야만 집에 돌아가도록 했다. 이른바 공포정치라고 하던가. 그는 악랄한 독재자였다. 나는 심장이 벌렁거려 진작 다 외운 구구단인데도 독재자 앞에서 그것을 틀리지 않고 외울 자신이 없었다.



반 아이들이 하나 둘 구구단을 외우고 교실 밖으로 사라져 가고, 팔이 아픈 감각이 공포보다 더 커지는 시점이 되어서야 나는 어찌 외웠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몽롱한 상태로 구구단을 전부 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나에게 각인된 구구단의 험난한 기억이다. 요즘 2학년 어린이들이 노래를 하듯 재미있게 외우는 구구단을 그런 식으로 공포에 떨며 외우게 하다니, 아홉 살 소년 소녀들에겐 잔혹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구구단’하면 의자를 머리 위로 들고 이유 없는 벌을 서며 공포에 떨고 있는 아홉 살의 나를 떠올리곤 했다.



단언컨대 의자라는 것은 오래도록 손으로 들고 있어야 하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다. 의자는 비어 있거나 누군가 앉아 있거나의 둘 중 하나를 위한 물건이다.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한 사실이다. 손으로 번쩍 들었을 때 그것은 흉기가 되거나 벌을 주는 용도의 것이 되어 버린다. 물론 많은 액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탈출을 위해 유리창을 부수는 용도로 의자를 던지기도 하지만.  


비어있는 의자는, 쉼표 같은 것



'의자 뺏기 게임'을 해 본 적 있는가. 혹자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의자 뺏기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라고 비유한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래도 나 하나쯤 앉을자리는 있겠지, 하고 엉덩이를 들이미는 순간 의자의 수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뻘쭘하게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의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패배자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무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의자의 수는 늘 모자라고 누군가는 항상 그것을 차지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빛나게 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수많은 '의자'들을 그렸다. 서양 회화사에서 그만큼 의자를 많이 그린 화가는 또 없다 한다. 그에게는 특히 '비어있는 의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망 후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그분의 빈 의자를 그림으로써 애도했다. 의자 연작을 그리기 시작하며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에 고흐는 이렇게 썼다 한다.


"수많은 비어있는 의자들이 있단다. 그 수는 계속 늘어갈 거야. 곧 비어있는 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그에게 빈 의자는 부재와 죽음을 뜻했고, 그는 죽음을 생각하며 많은 의자 연작들을 남겼다. 빈센트에게 비어있는 의자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정물이었다지만, 내게 있어 아무도 앉아 있지 않는 빈 의자는 ‘평온함’이다. 가능하면 나도 앉지 않고 서서 그를 가만히 바라봐 주고 싶어 진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 진다.



많은 의자들을 만났다. 잠시 소유하며 앉았을 때 그것은 언제나 빈 의자였다. 비어있는 의자는, 인생이라는 문장의 쉼표 같은 것. 나는 그 위에 체중을 싣고 응석을 부리고 싶어 진다. 그동안 충분히 피로했다고, 조금쯤 쉬어가도 좋은 것 아니냐고. 비어있는 의자는 생각지도 않게 비워진 시간, 졸고 있는 토요일 오후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머리 위로 의자를 들고서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독재자는 이미 사라졌다. 그 사실에 깊이 안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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