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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Nov 29. 2019

7. 아버지의 면도기

때로 어떤 물건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양조위가 애인에게 버림받은 뒤 사물에게 중얼중얼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향해 자기감정을 토로하고, 곳곳에 물이 새는 집을 보며 자신이 슬퍼하듯 집도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소설가는 자신의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충실한 개’를 떠올린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자신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차를 보면 서로 감정이 오가는 느낌이 들고 시간이 지나 그것이 고물차가 되면 자신도 지치고 늙은 인간이 되어 서로 동정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길고 밀도감 있는 시간을 함께하며 자신의 일상 속으로 침범하는 그것이 생물이 되었건 무생물이 되었건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마치 거울처럼 자기 심장의 빛을 반사하여 사물에 투영하는 것이려나.



내게 그러한 하나는 아버지의 전기면도기다.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사용하던 전기면도기는 자의식 과잉에라도 빠져 있듯 요란한 소리를 내던 것이었다. 그것은 여름날 한꺼번에 깨어나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며 울어대는 매미소리처럼 크고 시끄러웠다. 그 소리는 마치 잔뜩 화가 난 벌떼들이 귓가에 몰려들어 돌격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그 곤충의 무리는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단잠을 깨우곤 했다. 엄청난 굉음의 면도기 소리는 곧 아침이 왔다는 알림이었고, 오랜동안 아버지의 전기면도기는 내 알람시계가 되어 주었다.



지금은 스마트 폰에 내장된 다양하고도 현란한 소리들이 아침을 침범하지만, 한 여름 매미 떼 같던 아버지의 전기면도기 소리가 때때로 가슴 시리도록 그리워진다. 이제 더 이상은 그 ‘알람’을 들고 서서 아침 햇살 속에 면도를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면 햇살 가득한 창가에 선 그분의 뒷모습과 전기면도기 소리가 함께 포개어져 기억의 언저리 어딘가에서 고개를 들곤 한다. 지금 그 전기면도기는 우리 집의 가장 세월 깊은 물건이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손때 묻은 전기면도기의 심장은 아직 내 기억 안에서 여전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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