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

사유의 정원에서

by 해처럼

바이러스의 문제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느 감염학 의학자가 말했다. 입자가 커서 그것이 일상 속에서 보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고, 털어내거나 씻어내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말이 왠지 와 닿았다. 눈에 보인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보이는 족족 제거하면 되니까. 막아버리면 되니까.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 드물게 86학번 선배가 뒤늦게 복학을 해 다니는 경우가 있었고, 87, 88학번들도 꽤 있었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였고, 대학생들은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등록금 투쟁'에 열을 올렸다. 나는 학생회관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바닥에 털썩 앉아 등록금 투쟁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곁눈으로 슬쩍 바라보며 지나다니는 학생이었다.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였던 같은 과의 늙수그레해 보이던 동갑내기 남학생은 '모든 것이 다 정치'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켜는 것도 정치'라고 했다.





나는 운동권으로 불리는 아이들의 세련되지 못함이 싫었던, 그 남자애의 말을 1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80년대 학번들이 부럽다, 그들은 명확한 투쟁의 대상이 있었으니까, 그들의 적은 선명하게 눈에 보였으니까,라고.





4년 내내 무엇을 대항해 싸워야 할지 찾아내지 못했다. 마음만은 지금의 한 소수당처럼 투쟁 정신으로만 가득했지만,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 대상에 어쩌면 4년 동안 감염되어 있던 상태가 아니었을지, 지금은 그리 생각된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의미는 그저 입학과 졸업으로만 남아있다. 입학과 졸업. 입학식과 졸업식. 합격증과 졸업장. 그런 것.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말하면 입구와 출구. 그뿐이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만이 실체를 두 눈으로 보았고 끝까지 인간의 존엄이랄까, 생의 본질이랄까 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그 무엇을 내팽개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 또한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눈먼 자는 아니었을지.





졸업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대학 때 보이지 않았던 그 적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때부터일 것이다. 퇴임한 대통령이 자살을 한 이후, 수백 명의 어린 청춘들이 물에서 나오지 못한 그 이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또한 '모든 것이 정치'라던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그 애의 말도 이제야 조금 이해될 것 같다.





깊은 밤이다. 스위치를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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