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소비생활

소소하게

by 해처럼

가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는 여성들이 네일숍에 가서 남에게 자기 손을 맡기고 손톱을 알록달록하게 관리받는 것. 이걸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보는 시선도 분명히 많겠지만, 그저 매우 사적인 생각이므로 이해 바랍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패쓰해주세요~)




손톱을 관리받는 것과 머리카락을 관리받는 것이 뭐가 달라? 한다면, 많이 다르다. 우선 머리카락은 스스로 자를 수 없다.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펌 하거나 염색하거나 하는 것은 사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지만, 네일은 어쩐지 사치의 영역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긴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은 네일을 꼭 받아야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시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지도 모른다. 사실, 꼭 필요한 것을 사는데 돈을 쓸 때 우리는 별다른 소비의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트'의 영역이었던 (이름도 네일아트) 것이 생활 속으로 침투했기에 누군가는 자신의 손톱에 행해진 아트의 흔적에 기꺼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는 것인지도.



어릴 때는 지우개가 그렇게 탐이 나서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예쁜 지우개가 있으면 꾸역꾸역 사들였다. 그러면 언니는 지우개가 이렇게 많은데 또 샀다며 나를 나무랐다. 그럼에도 또 예쁜 지우개가 있으면 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지우개가 다 떨어져서 사는 것과 쓸만한 지우개가 꽤 있는데 또 사는 것의 맛의 차이는 분명 다르다. 거의 미슐랭 가이드 별점 5점과 1점의 차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컵들이 많은데 기어이 또 예쁜 컵을 하나 사는 나와 클립이 많은데 예쁜 모양의 클립을 보면 또 사고 싶어 하는 나의 딸. (확실히 클립 예쁜 것이 너무 많다. 하트 모양, 새 모양, 토끼 모양 등등) 요즘은 또 왜 이렇게 예쁜 에코백이 많은지. 이걸 사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듯하다. 마스크도 이제 필수의 영역을 넘어 아트에 이른 모양새를 많이 목격. 하지만 마스크는 숨쉬기 편한 게 최고니까 아트는 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이 어울리던 한 엄마는 세일 기간마다 세일 폭이 크면 클수록 "위험하다"며 외출을 자제했다. 일본어로 '아부나이, 아부나이' 하던 그녀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 유튜브에서는 거의 경쟁적으로 '하울' 영상을 올려 시선을 끌려고 한다. 처음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는 것은 농담이다. 자신이 쇼핑한 것들을 하나씩 개봉해보며 조회수를 올리는 것이 목적인데, 일부 유튜버들은 협찬받은 것을 밝히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었지. 일주일에도 두세 번 하울 영상을 올리는 그들이 언제 다 그것들을 입을 수 있을지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출처: 디스패치


아직도 가끔 손톱을 물어 뜯을 때가 있는 나로서는 그 버릇을 방지하기 위해 투명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하고, 여름에 샌들을 신을 때는 맨발이 어쩐지 민망하여 페디큐어를 바르곤 한다. 여름철 샌들 신는 발에 바르는 페디큐어는 일종의 립스틱 같은 역할을 한다고 느끼고 있다. 여기까지는 생활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맨손과 맨발을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일은 앞으로도 도저히 못할 것 같다. 그건 생활의 영역을 넘어선 아트의 영역이고, 페디큐어 쪽은 특히 주인과 노예의 영역(ㅠ) 같다는 생각마저.



하지만 고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필요 없는 곳에 '필요하다'는 온갖 이유를 부여하여 돈을 쓸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며 쾌감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네) 그러고 보면 네일아트라는 장르는 다양한 영역에 발을 딛고 굳건히 서있는 장르였던 것이구나.


아이가 수학 시간에 꼭 필요하다며 컴퍼스를 사달라고 부탁한 지 며칠 되었는데, 역시 이것은 필수의 영역인지라 자꾸 까먹게 된다. 오늘은 꼭 사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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