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언덕

소소하게

by 해처럼


일본에 오랜 기간 살고 있는 중이지만 나는 일본어를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소비하는 일본어, 여행자로서의 일본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당장 일본어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라인에 뛰어든다고 치면 내 조악한 일본어 실력 가지고는 먼지 덩어리 하나 생산해낼 수 없는 현실이다. 만일 부당한 일을 당해서 조목조목 따져야 하는 일이 생기면 역시 큰 곤란을 당할 것이다. 이런 언어소통의 문제를 끌어안고 이 나라에서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데미지라고, 물론 생각한다. 왜 공부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시도를 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언어에 어떤 흥미랄까 관심이랄까 하는 것이 도무지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근에는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인 혹은 일본어'라 할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해보기도 한다. 그걸 번역한다고 하여 일본어 실력이 향상되거나 하지는 않음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외우기가 싫은 것이다. 사적인 번역은 외울 필요도 없으며 사전을 찾아 한국어 단어로 치환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꾸역꾸역. 한번 내 뇌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달아나는 말들이기는 해도 뇌 어딘가에 미미한 자취나마 남아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 기분으로.




만약 모국어가 일본어고 한국어라는 것은 전혀 모른 채, 내 언어 구사능력이 지금 이 일본어 실력 그대로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은 대체 이런 어휘와 이런 표현력으로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다.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햇빛이 찬란하게 몸을 감싸고 바람 한줄기가 영혼을 감싸준다고 느끼는 어느 날, 이 일본어 실력과 어휘만을 가진 내가 그 햇빛과 바람과 삶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느끼겠지. 아마도 느낄 것이다. 그리고는 그걸 뭐라 표현하지 못해 그냥 웃으며 아 좋다,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느낌을, 그 현재와 지나간 순간을 어떻게든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완벽한 것이든 완벽하지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최대한 끌어 담은 문장으로.



그러고 보면 어린아이에게 한 언어라도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을 아이가 커가면 커갈수록 더 실감한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시험 외에도 수행평가의 비중이 높은데 대부분의 수행평가라는 것이 '글쓰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과목에서 글쓰기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이 스피킹과 롸이팅 능력이기에 교육과정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 테지.



외국에서 살고 있고,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다 보니 작용 반작용으로 모국어에 더 큰 애정을 갖게 된다. 문제는 요사이 등장하는 신조어나 유행어들에 약간의 반감이 든다는 것. ‘영끌’이니, ‘뇌피셜’이니 하는 말들도 뜻은 파악했다 하더라도 외계어처럼 느껴져 서걱서걱 낯설다. 이국에서 온 처음 보는 묘한 모양새의 과일을 씹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캐나다의 퀘벡주는 프랑스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80퍼센트 이상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비정상회담이라는 방송 프로에서 프랑스가 모국어인 한 외국인이 캐나다의 퀘벡 사람들이 쓰는 프랑스어는 너무 웃기다고, 옛날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던 프랑스어라고 비웃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도 못 가고 여기 고립되어 살다 보면 나 역시 신조어의 장벽 뒤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조어는커녕 가끔 어떤 ‘흔한 것’이 우리말로도 일본말로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고, 때로 쉬운 영어 단어가 아무리 해도 안 떠오르고 자꾸 일본어 단어만이 어이없이 떠오르기도 한다. (큰일이군)




세계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빠르게 달려가고 변해간다. 목적도 없이,라고 하기에는 목적이 또 너무 분명해 보이고, 나 같은 인류는 도태되는 건가? 불안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무엇의 속도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한해서는 가벼워지고 싶지 않고, 더욱더 진지해지고 무거워지고 싶다. 무겁고 느리게 말들의 언덕을 하나하나 세심히 정복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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