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맷집

소소하게

by 해처럼
그녀들의 교환일기를 읽다가 문득


유치원 교사인 나의 친구가 20대 때 사귀던 애인과 헤어진 뒤 이런 말을 했다.



"유치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들이 아침마다 엄마와 헤어질 때 너무 서럽게 우는 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영원한 이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는 걸 모르니까 그렇게 발작하듯 우는 거야. 지금 내 마음이 그 아이들 같다."





친구는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종종 그 말을 떠올리며 친구를 생각한다. 연약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털 잔 같은 영혼의 소유자인 그 아이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유치원 선생님이다. 자주 만나지 못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정말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내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중한 친구들이 몇 있지만 지금에 와서 교환일기 같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라 하면 바로 그녀다,라고 요조와 임경선이라는 (잘 모르는) 두 사람의 교환일기를 읽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 많은 나에 비해 일도 하고 아이 셋도 키우는, 게다가 열심히 자기 자신도 키우는 그녀에게 그럴 짬은 없겠지. 입맛을 다시며.







유치원 아이들도 아침의 이별의식이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어김없이 온다는 사실을 학습해간다. 아무리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올 거야'라 말해주어도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들이 있다.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느새 우리의 밑도 끝도 없는 테마의 고뇌들은 낙엽들처럼 땅에 떨어져 바람에 흩어지고 풍화되었지만 그 퇴적물들을 딛고 이 나이의 내가 이 모양으로 서있다는 사실을 아마 어렴풋 그녀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스스로를 동시에 알아차리고 만다. 내가 그러하니, 너도 그렇겠지.







나는,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직접 겪어내지 않으면 안 될 '의식'들을 맞닥뜨릴 것인지. 피할 수 없다면 맷집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근데 사전을 찾아보니 '맷집'은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 란다. 어머 무서워라. 그럼 그것 말고 다른 말을 찾아보...려했더니 그 아래 맷집의 두 번째 뜻이 적혀있다. '때려 볼 만한 통통한 살집'. 이 두 번째 의미에 집중을 하는 게 더 좋을 성싶다. 무언가 스윽 다가와도 아프지 않고 (혹은 덜 아프고) 견디어 낼 수 있는 쿠션을 키우는 것. 그 맷집을 키우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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