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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01. 2020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 뇌과학의 숲으로 걸어가보기

읽기의 자율주행

물리학자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읽었다. 2018년에 출간된 책으로, 뇌를 연구하는 학자의 시선으로 뇌과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주는 강연 형식의 글이다. 뇌과학과 뗄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삶에 대한 신중한 전망도 담겨있다. 이런 류의 책은 사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과학기술의 속도에 치여 시의성이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읽는 이들은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서둘러' 읽어둬야 하는 책이다. 몇 백 년을 관통하는 문학이나 역사서가 아니니까. 쓰는 사람도 그걸 알고 쓰는 것이겠고, 출간 후 2년이나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상당히 재미있고 유익하다.



목차를 한 챕터씩 훑어보면,
-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 우리 뇌도 ‘새로고침  있는가
-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
-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 인공지능 시대, 인간 지성의 미래는?
- 4 산업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뇌라는 우주를 탐험하며,  세이건을 추억하다

이렇게 열두 개의 장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과적인 베이스를 지닌' 화자가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가 뇌과학자라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과적인 사람이 문과적인 이야기를 하면 비슷한 카테고리 내의 어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뇌과학 분야를 인문학적으로 풀어가다 보니 전혀 생소한 과학적 용어가 묘하게도 인문학적, 철학적인 어휘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혹은 반대로 인문학적 용어가 과학적 관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일곱 번째 발자국에서 다뤄지고 있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 다음 문장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그는 그것을 은유(메타포)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다'처럼 전혀 상관없는 눈동자와 호수를 연결하여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내는 은유 말입니다. 훌륭한 은유일수록 A B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알아내게 됩니다. "
<열두 발자국, 정재승>


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에 대한 질의에 '메타포'라고 답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21세기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한다. 은유의 대상이 멀리 있을수록 훌륭한 비유가 되고, 뇌의 신경세포가 각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이어질수록 창의적 아이디어가 되며, 과학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예술이나 인문학이 이어질  훌륭한 사고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실제로 저자 자신도, 예를 들어 'DNA' 관한 글을 써야   과학서적들을 뒤적이지 않고 오히려 문학서적을 읽으면 훨씬 깊이있는 글이 나온다고 했다.



과학이라는 것이 생소해 보여도 결국은 인간이 속해있는  지구와 우주에 관한 여러 사실관계들을 설명하려 하는 학문이므로, 멀리 닿을  없는 곳에 떠다니고 있는 소행성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자처럼 일반 독자들과 과학이라는 학문에 한줄기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이가 있다면  친밀함은  커지게 되는 것이고.




'4 산업혁명'이라는 막연함을  책을 통해  문장으로 표현할  있게 되었다는 .  아톰 세계(물질세계의 기본을 이루는 아톰) 비트 세계(디지털의 기본단위인 비트) 일치화, 그것이 4 산업혁명의 요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음은 문송한 나에게는 성과였다. 핵심은 그것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갈길은 요원하다는 .



저자는 챕터마다  챕터와 관련된 짧은 인용구들을 적어놓았는데, 그중 하나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있다.”
 홀트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그런 지적능력을 소유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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