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12월. 어쩐지 꽉 찬 느낌의 숫자. 사람(?)으로 치면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같달까.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12월에 같이 일하던 팀에서 조촐하게 송년회를 했다. 40대 중반쯤이었던 피디는 말했다. 스물아홉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자신은 힘들었다고 했다. 딱히 서른을 맞는 감회가 깊지는 않았으나 그 말을 들으니 서른아홉이 된다는 것이 슬쩍 두려워졌던 것도 같다. 그분은 이후 마흔아홉도 맞이하셨을 테고, 지금 어쩌면 쉰아홉도 맞이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더 힘들다고 느끼셨을지 어떨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네.
나로서는, 그렇다. 역시 서른아홉은 힘들었다. 그냥 정신적 방황, 나이 먹는 두려움,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자책... 이런 류의 것들이 아니라 그런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심각하게 육체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이지 나이 먹는 두려움이나 해놓은 것 없다는 류의 우울감 같은 것은 사치에 가까웠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부러움이었다. 노인들을 보면 저렇게 나이들 때까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이곳 일본에는 또 어찌나 노인들이 많은지...
ku:nel 이라는 잡지는 여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진이다. 독특하게도 ‘나이 든 여성’에 포커스를 둔 잡지다. 대개 프랑스 (주로 파리) 여성과 일본 여성이 등장하며 그들은 40대 중반부터 약 70대까지의 연령대를 자랑(?)한다. 파리에서 제작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번 파리의 올드한 여성들의 스트릿 사진이 주를 이룬다. 스트릿 사진 옆에는 꼭 연령 표시가 되어 있는데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의 사진 옆에 나이가 표기된다는 걸 알고 허용하는 것일까? 약간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이 잡지에서 연령을 표기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작업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잡지는 나이 든 여성 아니면 훑어볼 일이 없다.
사실 40대 중후반 여성조차도 이 잡지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40대는 젊다고 젊어, 어딜 끼려고?’ 이런 느낌이다. 40대가 이 잡지를 읽을 때의 심리는... 50대가 되는 것이 두렵다, 60대는 또 어찌 살란 말인가, 의 불안이 엄습할 때 이런 올드 레이디들이 나름대로 즐겁게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며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기 위함이 아니려나.
한국의 서점에 가본 지가 오래되어서 한국에도 이런 올드 레이디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만들어져 있는지 어떤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아직은 없지 않을까 한다. 일본 잡지에 올드한 프랑스 여성들의 스트릿 사진이 등장하는 이유도 일본의 스트릿에는 그런 ‘올드함에도 멋진’ 레이디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겠지.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겠고.
이런 잡지의 가장 좋은 점은 미의 기준이 오로지 젊어 보이고, 어려 보이고에 포커스 되지 않고 ‘나이듦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아니 그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내리면서 딸에게 말했다. “네가 스무 살이 돼도 나는 안 늙고 너만 어른이 돼서 같이 커피를 마시면 정말 좋겠다.”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 “그건 안되지. 왜 엄마만 얄밉게 나이 안 먹으려고 해.”
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네. 충격받았다.
(+메인 사진은 다이안 키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