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맨과 마술사

사유의 정원에서

by 해처럼


몇 년 전, 일 관계로 서커스 맨과 마술사를 각각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들은 20대의 또래 남성이었음에도 북극과 남극 정도 거리만큼의 간극이 느껴졌다. 둘의 접점이랄까 공통점이라면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는 것. 양쪽 다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점에서 얼핏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캐릭터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일반화는 할 수 없다.






동춘서커스단에서 저글링 연기로 활약하는 서커스 맨 A 씨. 그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연습한 만큼 가능한 있는 그대로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숨겨야 할 것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결과물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줄수록 관객은 서커스 맨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러한 무대에서의 퍼포먼스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일까, 서커스 맨은 인터뷰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어쩌면 이렇게 순수한가 싶을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조금도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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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마술사의 수제자인 마술사 B 씨. 마술사라는 직업을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면 관객을 혹은 대중을 속아 넘길까를 고민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행하는 퍼포먼스가 바로 마술이라는 장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가는 마술이 주는 매력은 펑,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관객을 가장 자연스럽게 속여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의 관건이다. 몸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서커스 맨에 비해 마술사는 표정 하나하나, 미소 하나도 꼼꼼하게 계산을 하며 페이스를 유지한다. 무대에서의 그 매너는 타인을 대할 때 역시 일관되게 표현된다. B 씨는 인터뷰 중에도 쇼를 할 때처럼 자신을 다 드러내 놓지 않는다. 자신 만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정보마저 그는 노출시키려 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답변을 할 뿐이다. 아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그 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게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이 주는 영향력에 길들여진다는 실감을 했다. 서커스 맨과 마술사라는 두 직업군을 특정한 잣대로 함부로 평가 내릴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마술사의 성향은 어느 정도 플러스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벗으로 알아가기에 어쩐지 서커스 맨 쪽이 더 끌리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어디선가 마술사를 마주칠 수도, 서커스 맨을 마주칠 수도 있다. 마술사를 만날 때는 긴장해야 하지만 서커스 맨을 만날 때는 장담컨대 긴장을 풀어도 좋다. 세련된 자기 포장보다는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의 발현, 내 경우는 그쪽이 훨씬 호감이 간다. 아쉬운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서커스맨적 인간보다는 마술사적 인간이 더 우월한 지위를 취득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점이다. 도처에 마술사들이 가득한 세상. 정치판에도, 회사에도, 학교에도, 신문사에도, 거리에도 온통 마술사들 뿐인 세상... 그것은 어쩌면 섬뜩한 잔혹 동화 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특정 직업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닌, 은유적 표현임을 밝힙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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