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일본어에는 ‘이에기(家着)’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인터넷몰의 상품후기란을 보면 마음에 안 든다며 반품도 귀찮다고 그냥 '이에기'로 하겠다는 말이 종종 보여서 그런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한사전에는 '가정복'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우리가 집에서 입는 옷을 '가정복'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느냐 말이다. 뭐 '홈웨어' 혹은 ‘집옷’ 정도가 되겠지. 참고로 가방이나 신발 같은 상품의 후기에는, 역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犬の散歩用'(개 산책용)으로 하겠다는 불평이 올라와있다. (물론 개나 줘버리겠다는 뜻은 아닐 테지만 어쩐지 그런 뉘앙스가.....;;;)
여하튼 家着 즉 홈웨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몇 년 전 유행하던 '건어물녀'라는 말은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호타루의 빛>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오피스 레이디이지만 집에 오면 낡은 츄리닝에 빛바랜 티셔츠를 입고 뒹굴거리며 건어물(干物)을 먹는 여자다. 그래서 '건어물녀'라는 것. 나는 그 뜻을 처음 알고는, 집에서 츄리닝과 낡아서 밖에 나갈 때 안 입는 티셔츠를 입고 사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즉,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참 잘 입었던 티셔츠가 어느 순간 밖에서 보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때 '아 이제 집에서 입어야 되는 시점이군' 하는 마음을 정하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홈웨어로 입게 된다. 이미 여러 번의 세탁을 거친 그것은 뒹굴거리기에 부족함이 없이 찰떡같이 편안한 피부 밀착형 의복이 되어있다. 돌아보니 단 한 번도 '이건 집에서 입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옷을 산 적은 없었다. 선물 받은 본격적 잠옷 같은 것은 한 두 개 있지만, 몇 번 '불편하다'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츄리닝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를 집에서 입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이에기' 패턴을 잘 아는 남편은 갑자기 화상채팅을 하게 될 때 내가 좀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으면 꼭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집에서 예쁘게 하고 있네?" 라고...;;;
요즘처럼 집에 있는 시간이 권장되는 특수 시기에는 특히 이런저런 생활용품 등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게 되는데 택배를 받을 때 '본격적 잠옷'을 입고 있으면 갈아입어야 되는 등의 불편함이 분명 있다. 게다가 요즘은 딩동! 소리가 나면 주섬주섬 마스크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인 거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안 한 채 택배를 받은 다음 역시 마스크를 안 했던 배달원과 마주하게 되어 열흘 정도 두려웠던 적도 있었지. 흠.
집콕의 시대이니만큼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니 매일매일 낡은 티셔츠와 똑같은 츄리닝을 입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괜스레 '제대로' 옷을 입고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면 다시 '건어물'을 입기도 한다. 최근에는 '원마일 웨어'라는 개념도 도입되어 아예 츄리닝이 유행하기도 하고 집 안과 밖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한 장르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마일 웨어'를 굳이 구매하겠다는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몇 마일을 다니든 입기 편한 옷을 사서 낡아지면 집옷으로 입기에 부족함 없는 쪽이 좋다는 생각이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때문일까? 밖으로 나갈 때는 아무리 원마일이건 반 마일이건 반의 반 마일이건 '제대로 하고' 외출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경우 외국인으로서 그것을 치러내야 할 때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여기서의 '제대로'는 내 나라에 있을 때 근처 슈퍼나 그야말로 원마일의 거리에 다녀올 때에 비해 제대로라는 것. 어떤 누구에게도 '후줄근'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한 지가 거의 타국 생활을 한 햇수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집에도 새집증후군이 있듯 옷에도 새옷증후군이 있다. 그래서 새로 산 옷은 중요한 자리에 처음 입고 나가기보다는 덜 중요한 자리에 한번 입고 나가보고, 불편한 점을 체크하게 된다. (뭐 중요한 자리라는 것이 나로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하긴 하지만) 새옷증후군을 풀풀 떨쳐버린 '오랫동안 입은 옷들'은 낡아지는 것도 낡아지는 것이지만 나에게 최적화되어 집에서 편안하게 입기에 부족함이 없다. 때로는 불편한 부분을 잘라내 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활용한다. 너무 긴 티셔츠는 잘라내고 네크라인이 불편한 것은 편한 모양으로 오려내기도 한다. 소매를 잘라서 민소매로 만들기도 하고 긴 바지는 반바지로도 만드는 등등.
하지만 사실 이 글은 집옷 혹은 홈웨어로 전락하는 옷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새 옷은 낡아 헌 옷이 되어 신체와 정신에 유해한 모든 독들이 다 빠져나가고 잘려나간 채 디톡스 된 형체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그러한 건어물적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밖으로 튀어나가 세상이 겨누는 모든 긴장과 날렵함과 뾰족함을 극복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가장 최적화된 '홈웨어'는 역시 가장 오래된 옷들인 것이다. 비록 그것들의 색이 바래고 낡아 후줄근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