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력이 길러지는 순간

소소하게

by 해처럼

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마주친 단어 하나가 마음에 쿵, 거대 낙엽처럼 떨어졌다. 아마도 코로나, 집콕, 격리 같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개념들과 이어져 '혼자' 혹은 '나 홀로'가 상당히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단어다.


'혼자력'



아이들의 문제집에는 '다음 중 관련 있는 것끼리 선으로 이으세요' 같은 문제가 꼭 한두 개쯤 있는데 만약 그런 문제가 주어진다면 코로나 - 집콕 - 격리 - 비대면 - 재택근무 - 온라인 수업 - 마스크 등등 끝도 없는 연관어들이 끝말잇기 게임처럼 줄을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소용돌이의 중심에 '혼자력'이 오도카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혼자력? 혼자력!


그러고 보면 혼자서 자취를 해봤다든가 독거(?)를 해봤다든가 하는 경험이 없다. 인생사 통틀어 단 한 번도. 기숙사에서 한번 지내보고도 싶었고 자취나 하숙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그 조건들을 말이다. 그래서란 말인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진짜 외톨이는 외로움을 즐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내 곁에는 누군가가 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직장이나 학교로 출근을 하고 나대로 어딘가의 공간에서 오롯이 혼자로서 일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시간들은 물론 많았다. 혹은 모두들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있거나 할 때 그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의, 세상의 시간이 멈추고 나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그 쾌감을 만끽했던 듯하다. 그러저러한 원인들로 올빼미적 성향의 인간은 창조되고 형성되는 것인가 보다.


쾌감에 빠져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곁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잠깐의 혼자의 시간이 달콤하고 친구가 있기 때문에 카페에서의 혼자 있는 시간이 반짝였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혼자력'이 길러지는 시간은 오히려 가족과 벗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며 사랑을 주고받던 그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혼자력'이 길러지는 순간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닌, 함께 있을 때라는 요상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네. 그렇게 길러진 '혼자력'은 어느 순간 절대적으로 혼자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고 말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혼자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하여. 흔한 원리다. 흔한 것이 진리가 되는 순간, 흔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던 그 순간 만유인력의 깨달음이 인류에게 도래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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