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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14. 2020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 LEGO적 가족 이야기

읽기의 자율주행

제목만을 접했을 때 '동성애를 옹호하는 용감한 여인들의 커밍아웃' 인가 싶어 약간 망설였다. 미리 정보를 찾아본 바, 다행히 그런 류의 성적 정체성을 다루는 글은 아니었고 여자 둘의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 혹은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가족애(?)'에 대한 소회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익히 접해온 가족 구성 요건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에 관한 내용임에는 분명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우선 들었던 생각은 '가족을 이루는 형태는 다양할 수 있구나' 플러스, '혈연관계나 제도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신적 가족 관계라는 것은 친구 사이에도 가능하구나', 라는 것이었다. 언제든 헤어지면 남남이 될 수 있는 것은 혼인 관계도 마찬가지이고, 혈연 관계라 할지라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돈을 모으고 싶다와 
싱글일 때 친구랑 둘이 살아볼걸... 과 
마음이 꼭꼭 맞는 벗과 번갈아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의 감성에 불을 지른다. 씩씩하고 현실적이며 자신들이 진짜 멋있는 여인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는 점도 좋았다.


게다가 수건의 유통기한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인 김 혹은 황 작가에 따르면 수건의 유통기한은 '당신이 수건을 바꾸는 순간까지'다. 또 돈을 모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노후대비는 근육을 모으는 일이며, 사십 대인 우리는 이제 점점 더 '돈을 돈인 채로 그냥 두고 보기'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꾸만 돈을 다른 것들로 바꾸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기란... 역시 쉽지 않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패션지 에디터이며 카피라이터며 작가인 두 사람의 글발은 아름다운 구조물처럼 보기 좋았다. 모든 여성들에게 추천할 만한,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고 솔직하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매우 괜찮은 에세이다.


이렇듯 이야기를 걸어오는 책은 드물게 소중하다. 두 사람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 네 마리를 극 세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은 약간 지루했지만, 어느새 네 고양이들 사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닮은 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고 있었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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