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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23. 2020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영혼의 안티에이징론

읽기의 자율주행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다. 줄거리에 대해 아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책을 읽어나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을 덮고 (디지털적으로 덮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늙음'과 '추함'에 대한 생각에 묶여 있다. 그 '묶임'이라는 것은 온 인류의 묶임이 아닐까. 넓은 시선으로 보면 낡고 쇠한 것들이 새롭고 신선한 것들로 대체되는 과정이 누군가의 늙음이고 죽음이다. 또 전 인류로 그 과정을 확대해보면 풀이 나고 꽃이 피고 시드는 것처럼, 나무에 돋아난 신록들이 결국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과정처럼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 대체됨이 어디에선가 중단되거나 멈춰버리면 시스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전 인류사적 측면에서 그것이 참으로 당연한 일일지라도 개인에게, 자기 자신에게 매 순간 닥쳐오는 노화와 죽음을 향한 소리 없는 '질주'는 결코 순순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들의 비극은 육체는 늙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인 탓이다. 아아, 그거구나, 하고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1890년에 쓰인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 소설을 읽어나가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상징일까 하며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 가다 보면 오래지 않아 작가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음을 넌지시 알게 된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르게 메시지도 명료하고 교훈도 명확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한 '핸섬한 외모'를 가진 귀족 청년이 특별한 자신의 초상화를 얻게 되고, 그 초상화 속 그의 모습이 늙어가는 대신 실제 자신의 외모는 조금도 늙지 않고 아름다움을 유지해간다는 이야기.



- 그림 속 푸른 눈동자가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림 속 자신의 이미지를 향해 연민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그림은 이미 변해 있었고, 앞으로 더욱 변할 것이다. (중략) 자신이 저지른 온갖 죄악 때문에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얼룩이 번지고 흠이 생기리라. (본문 중에서)



-그는 점차 자신의 미모에 반했고 자신의 영혼이 점차 타락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때로는 소름 끼치도록 기괴한 환희를 느끼면서, 때로는 죄악의 흔적이 더 끔찍할지 노화의 흔적이 더 끔찍할지 궁금해하면서 ...... 흉측한 선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본문 중에서)



예전에 마릴린 맨슨이 서태지를 만나 '당신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군, 그 나이에 젊고 아름다운 미모를 유지하는 걸 보니'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이 그저 서태지의 외모를 칭찬한 농담이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악마주의자' 컨셉인 가수가 그런 말을 했던지라 그것을 진지하게 믿는 견해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니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기보다는 서양 문화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일종의 경구 같은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그 근거가 드러나 있었다. 이 책이 최초의 출처일까?



- 그자는 이곳에 들락거리는 인간들 가운데 최악 중의 최악이야. 그자가 아름다운 얼굴을 갖는 대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있지. (본문 중에서)



물론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설에서 단지 늙음=추함이라는 공식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늙음에 대한 조롱보다는 '영혼의 타락'에 대한 비유로서 늙음을 은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육안으로는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도리언 그레이'는 우연한 기회에 자기 영혼의 실체와 민감한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스스로의 죄가 얼마나 진홍빛처럼 붉고 추한지 대개의 인간은 알지 못하나 도리언 그레이는 그것을 목도한다. 초상화에 반영되는 자기 자신의 영혼의 추악함을 싫어도 낱낱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추가되는 죄가 피부의 보기 싫은 주름을 만들고 굵직한 죄악들이 검버섯과 사악한 눈빛으로 그려지고 기록된다.



그러나 자칫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들은 늙음=추함이라는 오해를 가지기 쉽고, 나 역시 글을 읽으며 늙음을 혐오했다. 아마도 인간이란 자신의 영혼을 지속적으로 돌보지 않으면 원래 추하게 귀결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그것이 외모에 가려져서 '봐줄 만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안티에이징 관리를 하고 시술을 하는 외모 관리 방식은 놀라운 속도로 지속 발전하지만, 영혼의 안티에이징은 (에이징이라는 것이 부정적이라는 전제하에) 아무도 방법을 모른다. 보이지 않으므로. 진지한 독자라면 도리언 그레이의 최후를 보며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티에이징의 가느다란 실마리 같은 것을 이미도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스카와일드의 한창(?)때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의 삶 자체가 이 소설에, 각 인물들의 캐릭터에 녹아 있다. 그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동성애라는 죄로 감옥에 갇혔으며 결국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명언 제조기'로 불릴 만큼 수많은 명언들을 남겼는데 그중,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마이며,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라는 말은 너무도 도리언 그레이적이며 오스카 와일드적이다.




ps.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명언들은 재치 있고 감동적인 것이 정말 많은데 그중 꽤나 마음에 드는 것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문학과 언론의 차이는 언론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고, 문학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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