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처럼 Dec 16. 2020

모던과 낡음 사이

소소하게


‘지금 이 순간’은 우리의 가장 모던한 순간일까. 2020년이라는 지금이 우리가 경험한 가장 최신의 해니, 그럴지도 모른다. 2000년에는 2000년이 가장 모던하다고 생각했고, 1970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1970년이 가장 모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949년에 디스토피아를 그린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인 <1984>의 배경이 되는 1984년은 이미 40여 년이나 지나버렸다. 40년이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 젊은이는 노인이 되는 시간이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첨단의 피플들도 과거의 자신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과거의 나도, 과거의 당신도, 과거의 그들도. 우리들은 그만큼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보한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대개는 중얼거리게 된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아쉬움, 그리움 같은 것을 머금은 한숨 같은 말들을.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고 하니, 하루키의 <우리들 시대의 포크 로어>라는 단편을 오랜만에 읽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대학생이었던 소설가의 60년대에 대한 회상, 그 시대의 문화 혹은 성문화, 혁명, 비틀스나 도어즈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느낌들. 그 모든 것이 지나갔고 그들은 노인이 되어 <일인칭 단수> 같은 소설을 쓴다. 어린아이가 성장을 거듭하다 늙어 노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축복받을 일임과 동시에 가장 슬픈 일이다. 이것은 <우리들 시대의 포크 로어>에 옮겨 놓은 어느 동화의 마지막 소절처럼 우습지만 너무 우스워 눈물 나는 인생의 흐름 일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 로어, 무라카미 하루키)



 무엇인가 원래 갖고 있던 것들을 지속적으로 붙잡으려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솔직한 일이다. '더 많이' 붙잡으려 하는 것보다는 훨씬 담백하지 않은가.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니잖아! 를 외치는 이면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설움이 스며있다.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체험은 모든 인간이 다 한다. 다 아시겠지만 그 대표 선상에는 '젊음'이 있는 거겠죠. 겨울 앞에 선 나무들이 서서히 낙엽들을 떨구듯 우리는 매일 한 줌씩의 젊음을 길바닥에 흘리고 산다. 젊음이라든가 혹은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들을.  


시베리아 호랑이


잃어버리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겠다. 이를테면 능숙이라든가, 지혜라든가, 노련함이라거나 현명함 같은 보기 드문 진귀한 것들 말이다. <Our Planet>이라는 걸작 다큐의 메이킹 영상에서 멸종되어 가고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꼬박 2년을 그 눈의 산속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봤다. 결국 2년 만에 호랑이의 영상을 잡은 것이다. 멸종위기의 그 진귀한 시베리아 호랑이를 단지 몇 분 카메라에 담는데 걸린 2년의 참을성이 우리의 인생에도 요구되는 것일까. 노련과 현명과 지혜라는 진귀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세상은 매일 더 모던해지고, 우리는 매일 딱 그만큼 낡는다.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는 식의 마무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작가의 이전글 읽기의 지구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