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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Nov 25. 2019

3. 가방, 탐심과 탈출 사이

시즌1. 뭐든지 물건

여섯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금에야 전혀 기억에는 없지만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나고는 '집을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우선 짐을 싸기로 하고 제일 좋아하던 인형이랑 장난감 몇 개를 갖고 나가려는데 넣을 만한 가방이 한 개도 없었다. 나는 눈에 띄는 엄마의 스카프에 당시의 내게 최고로 소중한 것들을 몇 개 넣고 둘둘 싸서 집을 나섰다.



일단 집을 나서긴 나섰는데 당연하겠지만 갈 데가 없었다. 전봇대 뒤에 잠시 숨어서 엄마가 나를 발견했는지를 체크한 뒤 잠시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당시 우리 집에서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큰집이 있었는데 한창 큰집 식구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던 나는 '울지도 않고' 큰집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가서 조용히 부엌으로 가 따끈하게 데워져 있는 부뚜막에 가만 앉아 있었다. 뾰로통한 얼굴로 조그만 보따리를 껴안고는 부뚜막에 앉아있는 나를 본 큰엄마는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뭔가 맛있는 간식거리를 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오셨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가 용케도(?) 나를 찾으러 왔고, 나는 엉엉 울면서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방이 필요하다고.    


  

가방은 또 다른 자아라고?



가방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동요였던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디 가세요'라는 노래의 '큰 가방'을 '금가방'이라고 몇 년 동안이나 착각해왔는데 번쩍번쩍한 금가방을 메고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를 상상하며 부러워했었다. 굳이 금으로 된 것이 아닐지언정, 작건 크건 뭔가를 집어넣을 수 있는 물건이 좋았다. 지금에야 '이 정도쯤의 경제력은 갖고 있어요'의 의미마저 가방의 영역에 포함되어 버렸지만 그때는 그런 의미까지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심리학자는 여자의 가방이 갖는 의미를 여성의 ‘또 다른 자아’라고 까지 말한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는 글쎄 가방이 여성에게는 제2의 자궁이란다. 어쩌다가 하나의 '보따리'의 아류인 가방은 자아 혹은 자궁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더란 말인가. 굳이 동의를 할 생각은 없다. 그들도 굳이 내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었겠지만.



살아오면서 수많은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공식적으로 들고 다닌 첫 가방은 유치원 가방이었지만 그 가방은 기억에도 존재감도 전혀 없다. 아마 다른 유치원 친구들 모두가 같은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출을 감행했던 '보따리' 이후 내 최초의 가방이라면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받은 책가방이었다. 그것은 명확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렴풋한 실루엣으로만 기억의 주변부에 떠돌고 있는데, 빨간색의 '리쿠사쿠'라 하는 가방이었다. 리쿠사쿠는 그저 '백팩'이라는 뜻인데, 그게 가방의 브랜드명이었는지 아닌지는 정확지 않다. 3년 동안 그 가방을 소중하게 매고 다녔고, 4학년 무렵에 부모님은 그보다 약간 더 큰 새 책가방을 사주셔서 또 그렇게 3년을 들고 다녔다. 그 책가방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사진도 하나 남아있지 않아 꽤 아쉽다.



중학생이 되니 다들 소위 '보스턴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가방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나 역시 시류에 편승하여 밝은 하늘색과 네이비가 조화를 이룬 보스턴백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다녔다. 프로스펙스였는지 아디다스였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은데, 그 가방을 무척 좋아했고 가방과 나 자신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 수많은 물건들 중에서도 '나와 어울리는' 것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기하다 여겼다. 고등학교 때는 또 유행이 달라져서 다들 백팩을 메고 다녔다. 세 살 위 언니가 쓰다가 하대하는 이스트팩 같은 류의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그때는 대학생이던 언니 것은 뭐든지 다 좋아 보여서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의 덕선이 에피소드는 모든 자매의 그것이 아니었으려나. 여하튼 늘 무거운 가방 탓이었는지, 공부에 짓눌린 청춘이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고교 시절의 가방에 대해서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뿐이다.     


대학 시절에는 무슨 가방을 어떻게 갖고 다녔는지 도통 기억에 없다. 완전히 페이드 아웃된 텔레비전 화면처럼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데 학창 시절 중 가장 현재에 가까운 지점인데도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정도이다. 수많은 복합적인 '문제들' 때문에 정신줄을 놓고 다니던 시절이다. 그때 나는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도 여러 번 겪었고, 지갑도 많이 잃어버렸었다. 가방도,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도, 뿐만 아니라 내 뇌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추억 팔이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지금에 이르러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방은 천으로 된 가방이다. 나보다 너 댓 살 정도 선배이신 어떤 분은 이제 가방은 좋은 것 다 필요 없다며 가벼운 가방이 최고라고 하셨는데 벌써 그 이야기를 들은 지도 4년 전쯤 되나 보다. 지금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도 그냥 가볍기만 한 가방보다야 '가볍고 예쁜' 가방이 좋은 건 당연하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엄마 거'라 이름 붙은 건 뭐든지 다 좋아,라고 말하며 나의 에코 백을 빌려달라고 하는 걸 보며 대학생이던 언니의 것은 뭐든지 좋았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벼운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새 가방'이다.



나는 무얼 주워 담으려 늘 '보따리'를 탐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의 탈출을 감행하려는 것일까.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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