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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Dec 28. 2020

 지금을 견딜 동력

소소하게


"우리는 실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고 누군가는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라는 인칭대명사의 형태로 작성되기는 했지만 누군가는 누군가일 수도, 무언가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하지'라는 말은 '빠지지'라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실로 무언가에 빠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이 역시도 명확한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사람에게든 물건에게든 행위에든 빠져있지 않고는 시간을 견딜 수 없다.




자식이건, 살아있는 동물이건, 인형 동물이건, 연예인이건, 일이건, 알코올이나 카페인이건, 쇼핑, 음식, 음악, 영화, 드라마, 책, 애인, 정상 종교, 사이비 종교, 잠, 돈...... 셀 수 없는 수많은 종류들의 것에 우리는 빠져든다. 그 어느 것에도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울감에라도 빠져든다.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체계화된 근거를 댈 수 있겠지만, 비전문가의 언어로 비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빠져듦의 이유는 시간을 견딜 동력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한다. 즉 ‘지금을 견딜 동력'을 일구기 위함이다. 수력 발전, 화력 발전, 풍력 발전처럼 오늘 우리가 빠져든 그것들로 인해 동력이 발생하고 그 동력으로 일상의 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오리배를 발로 굴려 앞으로 나아가듯이.





 빠져듦의 동력으로 일상을 굴리고 또다시 내일에 희망을 걸어보는 유한 반복이 인생이다. 어린아이가 어서 자라 어른이 되어 마음대로 살고 싶듯 '어쩌다 겉모습이 어른'이 된 나이 먹은 어린애들은 그래도 내일이 어제보다 낫겠지의 마음으로 내일에 슬쩍 기대를 건다. 더 더 쎈 코로나가 등장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년엔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한 줌 희망 같은 것을 움켜쥔 채.





일 년을 견디게 했던 내 동력 1은 '쓰기에 빠져듦'이었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하얗게 빈 편집기를 열어두고 몇십 분을 멍 때리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기록을 위한 기록이고 싶지도 않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나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의 소리여야만 했다. 그것만 의미 있었다. 정직하고 솔직한 딱 그만큼만 그것은 내 동력이 되어 주었다. 동력 2는 읽기였다. 읽기가 없었다면 역시 동력 제로 상태가 급격히 자주 닥쳐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읽고 쓰는 발전소가 나를 지탱해주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2021년에도 동력 1,2는 여전하지 않을까. 다른 발전소를 또 하나 열게 된다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제 4일 남은 2020의 귀퉁이에서.


이미지출처: watt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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