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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06. 2021

2021의 점입가경

소소하게

할아버지  분이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 1: 코로나 대책 확실히 해야 . 어떻게 하고 있어?

할아버지 2: 코로나 대책밖에 안햐...


- 일본의 코로나 대책 공익광고 중에서. 돌아보니 필자도 ‘코로나 대책 밖에 안’ 하고 사는 듯하다.




숫자로서의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바이러스가 회개를 하고 그럼 저희는 이만... 반성 모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저 생존만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존재들. 공생 따위는 없으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숙주를 파괴할 뿐이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갈수록 경치가 더욱 깊어지고 좋아진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지만 현대에 와서 점입가경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꼴은 못 봤다. 2021,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입가경.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지 그것들은 모를 것이다. 광고의 할아버지들이 코로나 대책밖에 안 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도, 많은 이들도 그렇게 살아내고 있으리라.


어릴 때는 나이와 인생의 즐거움이란 두 축의 그래프가 비례 관계라 굳게 믿었다. 한 살 더 먹으면 재밌는 일이 더 많이 있겠지의 믿음이었다. 어느 지점에 서자 인생의 즐거움과 나이의 관계는 반비례구나, 느껴지는 순간이 도래했다. 한해 한해 나이가 쌓일수록 쥐고 싶은 것은 더 많고 쥘 수 있는 것은 적다. 그것을 알아버렸다. 점입가경이다. 점입가경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었을 텐데, 끄응.

  


그래도 1월이라는 숫자가 다시 세팅되고, 어쩐지 새로운 스타트 지점에 선 새 인간이 된 이 기분은 마라톤 시작에 앞서 많은 참가자들이 약간의 긴장을 보이며 우우 몰려있는 어수선함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몇 퍼센트의 설렘과 약간의 긴장과 우울감이 뒤섞여있다. 물론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본 적이 없으니 그 느낌이 무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미 출발 사인은 주어지고 시간이 몰아 대는 인류의 대열에 끼어 12월 31일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겠지. 앞 뒤 주변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로 뛰어가고 있음을 때때로 확인하면서,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나를. 뒤처지면 숨죽인 채 뒤를 따르고 있는 맹금류의 밥이 될 것을 잘 안다. 그 무리 속에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고 평화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기에, 가장 평범한 것을 유지해낸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서 그 누구도 시샘하지 않고 소외감도 없이 그렇게 뛰어가고 싶다. 2021년이라는 이름의 트랙을.



ps. '점입가경'의 본래 의미를 매일 회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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