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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08. 2021

누군가에게 말을 놓는다면

소소하게

나이가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이가 좀 들고 나서도  나는 어쩐지 누구에게건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 존댓말과 반말이 엄연히 구분되는 모국어를 가진 나라에서 '말을 놓는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친근감이요, 다른 하나는 위압감의 표현이라 생각해왔다. 전자가 '우리 친하게 지내자'의 제스처라면 후자는 '내가 너보다 위거든?'을 드러낸다. 동갑내기라면 그나마 덜 어렵게 말을 놓을 수 있겠는데, 나보다 어린 경우 말 놓기가 더욱 어려운 것은 어째서인지. 그러니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놓는다면 그 사람과 진정 친해졌다는 뜻이다.



말을 놓는 것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언니~'라고 사근 거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이것 역시도 일생일대의 허들이다. 친언니가 있음에도 사회에서 만난 다른 '언니들'에게 그 '언니'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뿐 아니라 오빠가 없어서인지 누군가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 또한 엄청난 닭살적 상황을 느낀다. (사실 요즘에야 오빠라 부를 상황은 거의 없지만) 그 ‘언니 언니’ 소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나보다 연상의 언니들과는 잘 친해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동생 쪽에서 먼저 다가가고 언니를 챙겨야 이쁨도 받는 것일 텐데 뻣뻣하고 애교성 제로의 인간인 나는 언니들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지는 못한 것 같다. 그 언니들이 싫어서도 아니었고 거부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려웠을 뿐.



오히려 동생들이 나를 챙겨주곤 했다. 일을 할 때도 나를 언니라 부르는 후배들이 시시때때로 다가와 친해지고 나를 챙기고 내가 챙겨주고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도 나는 나이를 떠나 늘 막내딸 역할이었던 것이다.(;;;) 뭐 아무려면 어때, 하고 생각했다. 동갑내기들과 함께였던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뛰어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주변에는 언제나 착하고 마음 통하는 동생들이 제법 있었다. 이건 정신연령의 문제일까. (어디선가 맞다고 외치는 소리가;;)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동생들의 정신연령이 나보다 높은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내가 동생들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언니로서 그녀들을 잘 챙겨주지 못했던 아쉬움이 크다. 주로 챙김을 받았던 것이다, 언제나.




요즘에 와서는, 오프라인 상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전무하다. 사람이 사회생활 혹은 직업 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순이 된다. 한국이었다면 동네 친구들이라도 좀 사귀었을까? 역시 대개는 동생들이었을테지. 다만 이 온라인 상에서 얼굴도 본명도 그리고 '나이도' 잘 모르는 브런치 벗들의 가끔의 코멘트와 마음이 담긴 공감의 흔적에서 사람의 온기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것이지, 사람의 온기 말고 다른 무슨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도 아니고 말이지.



바이러스가 무섭게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시대라 해도, 온기마저 제거할 수는 없는 것. 어쩌면 우리는 모두 매일 소리 없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창작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소설을 쓰는 태도는 옛날 동굴 시대의 이야기꾼 같은 것입니다. 저녁 무렵, 모닥불 주변에 모두 둘러앉아 '자 무라카미 씨 이야기를 좀 해보시죠'하는 말을 들으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두 두근거리며 웃거나 울거나 하면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독자라는 것은 함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후의 인터뷰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모닥불을 피우면 불가로 모여들어 차례차례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따뜻한 풍경이 보이는 듯도 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위는 모닥불까지는 아니더라도 촛불 정도는 되지 않으려나? 조금은 아련하고 말간 비누향 같은 향기를 머금은 향초라면 좋겠는데... :)



어쩐지 내가 알고 지낸 수많은 언니들과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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