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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14. 2021

페르소나 전성시대의 우리라는 배우

사유의 정원에서


다음  직접 목격했을  가장 당황스러운 장면은?

1. 학부모들이 참관하고 있는 교실 안에서 쉬는 시간에 양치질을 하는 선생님
2. 지하철 안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화장을 시작해서 화장을 끝내는 여성
3. 저녁 데이트를 앞두고 하루 종일 앞머리 헤어롤을 말고 교내를 돌아다니는 대학생


우열을 가리기는 아마 어려울지도 모른다.


 번째 보기인 헤어롤 이야기는 ​필자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고 최신 트렌드를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교수가 현대인은 정체성을 수시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예로 들은 것이다. 헤어롤을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지내다가 저녁에 남자 친구나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을 앞둔 5 전에 헤어롤을 푸는 학생에게 헤어롤은  '페르소나'라고 그는 설명했다. 자신의 본질의 모습을 헤어롤 속에 종일 감추었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 드러내는 것이라는, 헤어롤을 풀기 전까지 만나거나 스치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있어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도 곁들여.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개의 페르소나(가면)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말했다.   개의 페르소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양치질이고, 헤어롤이며, 지하철 화장술이 되는 것인가. 학부모들 앞에서 양치질을 하던 선생님과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나는 타인에게서 보지 말아야  것을  버린 듯한 당혹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당혹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지금 여기 같은 공간을 잠시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저 풍경 혹은 벽이라고 밖에 말할  없기 때문이다. 벽이나 창문 밖의 풍경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본질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대한민국에 온라인 페르소나가  출발되고 있던 시점에서의 무대 장치는 '싸이월드' 단독이었다.  시대에는 모두가 싸이만 했고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소유했다. 페북 시대가 열리니 싸이를  버렸지만 이제는 어느  무대장치에 머물지 않고 페북은 페북대로 자신의 사회적 인맥을 드러내고, 트위터는 트위터대로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며, 인스타는 인스타대로의 먹은  가진  등을 포함한 경험치를 뽐내는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이 진정 페르소나 전성시대가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각각의 무대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  사람들 앞에서는  가벼워 보이고 싶다
-  분들 앞에서는 생각이 있는 인간이고 싶구나
- 당신들은 친밀하고 소중하니까 뭐든 보여줄게,
 분류법으로.



허나  어떤 무대 모드에서건 결코 상대방을 벽이나 풍경으로 바라보는 자세일 수는 없다. 나는 (실수가 아닌 ) 헤어롤을   거리를 활보할  없고, 모르는 타인들 앞에서 양치질을 하거나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런 모습들은 아무리 ‘소중한 당신들' 겨냥한 SNS  할지라도 편집해야  조각인 것이다. 이러한 마인드가 인간에 대한 예의인지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인지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을 벽이라고 치부해버릴  없는 마음과 동시에  역시 타인에게서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어우러진 심리가 아닐까 한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살아가는 시대라 해도 우리라는 배우는 가장 먼저 ' 자신'이라는 관객 앞에 선다. 모든 기준에 앞선 '내가 보는 '라는 기준 앞에 먼저 서야 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기  거울 앞에 서서 먼저 나를 점검한  거울  세상을 향해 나서는 것처럼, 위대한 화가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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