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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an 11. 2021

영원의 아이템을 갖추어간다는 것은

소소하게

일본어에는 '오샤레'라는 말이 있다. 'おしゃれ(御洒落)'라고 쓰는데 우리말로 하면 '멋쟁이' 혹은 '멋, 멋부림' 정도가 된다. 사전을 찾아보고 처음 오샤레의 한자가 저렇게 생겼음을 알았다. 이 오샤레라는 말은 일부러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닌데 저절로 습득하게 된 일본어 중 하나다. 너무 자주 언급되기 때문인지 바람결에 들리는 유행가처럼 무심코 귀를 후비고 들려오는 말인 것이다. 보통은 잡지나 광고에서 오샤레를 자주 언급한다.



우리나라에서 '멋쟁이'라는 말은 참으로 낡은 낱말이 되어버렸는데 일본의 ‘오샤레'는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멋쟁이'는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외화 시리즈 <A 특공대>에서 ‘그나마’ 가장 잘생긴 금발 배우의 닉네임이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요즘은 '멋쟁이'를 뭐라고 표현하는 걸까. 트렌드세터? 힙하다? 스타일 고수? 간지 좔좔? 명확한 건 모두 다 '외래어'라는 것.





서점의 여러 코너 중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책들만 모아둔 곳이 있다. 서점에 가면 주로 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다른 책들보다 ‘그림이 많으니까’의 이유로. 엊그제도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서 들춰보다가 중년의 멋의 철학(?)을 다룬 책이 있어 선 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어린것들의 오샤레는 재미가 없으므로 나와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의 겉모습을 훑어보게 되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멋져 보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아무렇게나 툭 걸쳤을 뿐인데 특별한 멋이 느껴지는 사람이 되는 건 모두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가장 오샤레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이른바 '메이커' 또는 '브랜드'를 두르고 있어야 오샤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기 자신에 어울리게 입어야 멋이 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그 '자신에게 어울리게'라는 것의 범주를 정하는 것은 약간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수치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엇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서서 후루룩 훑어본 그 책에는 멋쟁이 고수로 알려진 이들의 스타일 철학 같은 것이 한 문장씩 적혀있었는데 그중 마음을 흔들었던 몇 가지를 옮겨본다.



- 무엇을 입는가가 아닌 어떻게 입을 것인가, 에서 그 사람다움이 피어난다.

- 영원의 아이템을 자신의 인생에 맞게 갖추어간다.

- 멋이라는 것은 그 사람다움이 어느 정도로 표현되어 있는가의 문제이다.

-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 어떤 실루엣을 만드는가가 중요.

- 데님 팬츠는 1년에 한 번 갱신한다.

-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흰쌀밥' 같은 아이템을 정한다.

- 무엇을 입는가 보다 '그 사람과 만나서 좋았다'라고 느껴지는 멋을 추구할 것.



깨알같이 의미심장한 말들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명제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만나서 좋았다'고 느껴지는 멋이란 대체 무엇일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흰쌀밥 같은 아이템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것이 몇 개 있었다. 그렇지만 '영원의 아이템'이라니 그건 정말 알듯 말 듯 하지만 모르겠군.




인테리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옷을 입는 분위기는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를 규정해가는 것.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온건하게 받아들이거나 수정해가는 것. 포기할 건 포기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꿋꿋이 지켜가는 것. 그렇게 자신의 품위를 만들어나가는 것. 내면에서 추구하는 것이 겉으로 보여지고 마는 것이 '오샤레'라고 한다면 어떤 물건 하나를 고르는 것도 매일 더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취향은 그렇게 서서히 철학이 되어가는 것인가 보다. 어쩌면 인생은, 생존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결국 취향의 문제일까.


위에 옮겨 적은 스타일 고수들의 스타일 철학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영원의 아이템을 자신의 인생에 맞게 갖추어간다."였다. 영원의 아이템이라니 이건 거의 ‘물아일체’의 경지가 아닌가 말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외물(外物)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됨.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흰쌀밥 같은 영원의 아이템을 찾아 그 물건과 내가 하나가 되는 체험 같은 것이 과연 가능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몸에 걸칠 것이 필요한 존재들이니 그것들과 나 사이의 일체감 혹은 영원성을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 번쯤 느껴보는 것도 삶의 소소한 재미가 아니려나.




(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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