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초딩이냐? 그런 소릴 하게"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류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나의 딸,
-사람들이 은근히 초등학생을 무시한다는 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알 것 같아.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매기는 학교에서 '홍'씨성을 갖고 있어 언제나 맨 뒷번호(황 씨가 없는 한)를 하게 되는 나의 딸,
- 뒷번호로 사는 것도 이렇게 억울한데 태어난 색깔 가지고 인종차별을 당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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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드디어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인가. 피부색뿐이 아니다. 세상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며 담을 쌓거나 선을 넘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일 년 된 존재가 느낄 수 있는 저 감정 또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달라질지 모른다.
한국에서 최근 이슈가 된 뉴스에서, 배달하는 분이 바로 옆에 있는데 "너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이 아저씨처럼 추운 날 밖에 돌아다니면서 먹고살아야 되는 거야. 알았어?"라고 말하는 애 엄마가 실제로 눈을 부릅뜨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도시괴담인가 싶다.
갑작스레 생각나는 에피소드. 딸이 한살이 막 되었을 때였다. 잠깐 놀러 간 한국에서 아기띠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 이동 중이었는데, 바로 옆에 모녀가 껌을 씹으며 앉아 있었다. 20대 초반 딸과 50대 정도로 보였던 아주머니였다. 그들은 옹알옹알 거리는 우리 딸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대뜸 한 명이 ‘어머 얘는 이빨이 벌써 났네~’라고 말했다.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이빨 빨리 나면 안 좋아’라고 아주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가만히 넘겼다. 이 사람들이 나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귀가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웃긴 것은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나도 안 들은 척했다는 점이다. (나도 참 나다) 무례함, 이라는 단어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사람들은 ‘이상한’ 축에도 들지 못할지 모른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이다. 매일 범죄가 일어나고 법의 그물망에 미처 도달하지 않는 심리적 범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개는 스스로가 이상한지 '전혀' 모른다. 그런저런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도처에 널린 돌멩이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말이라도 누군가를 비하해서는 안된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지 않은가.
올해 눈이 많이 오는 한국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는 분이 그 일을 경험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전문가의 해석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분노사회’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도시괴담처럼 들린다.
“눈사람은 눈덩이나 연탄재와 달리 이름에 ‘사람’이 들어있다. 오리너구리가 오리가 아니라 너구리이듯, 눈사람은 눈이 아니라 사람에 방점이 찍혀있는 단어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귀하고 소중하듯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 블로거의 글 중에서)
겨울에 자주 먹는 귤 하나하나에 언젠가 장난 삼아 다양한 표정들을 그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냥 눈코입을 그렸을 뿐인데 껍질을 까기가 미안스러워지던데. 눈사람을 때려 부순다는 이야기가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눈사람도 사람이니까 인권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그걸 만든 사람의 상처를 조금쯤 고려해볼 수 있는 것 아닐는지.
딸은 갖가지 종류의 차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북극곰이 좋아져서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휴지를 아껴 쓰려고 적어도 ‘노력’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발전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세제의 남발부터 줄여야 할 것 같네. 너무 교훈적인가. 교훈으로 끝나는 글은 대개 재미가 없지만.
나도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매일 그 질문을 나지막이 던져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