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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Feb 13. 2021

'받침'으로 끝나는 이름

소소하게

아이를 낳으면 대개의 부모들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능하다면 채워주고 싶어지는 .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글에 언급했던 젓가락질에 대해서도, 달리기나 체력조건, 체격 조건  수많은 것들에 있어 엄마아빠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스타트할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 것이 인류 공통의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선택할  있는 범위 내에서 다들 어영차, 애써보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들  하나로 아이에게 '받침이 들어가 있는 이름' 지어주는 것이 우리 부부의 로망이며 희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 말고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들어가도록  주고 싶었다는 의미다.  이름도 남편의 이름도 이름의  글자에 받침이 없다. 성을 나타내는  글자와 가운데 글자에는 받침이 있지만 중요한 방점은  글자에 있다. 보통 한국인의 이름을 부를  이름 뒤에 따라오는 조사는 '00~' 또는 '00~'인데, 나와 남편의 이름  글자에는 받침이 없어서 '00~' 불려본 적이 없다. 그랬다. 우리는 '00~' 못내 갈망했던 것이다. ~~~~.



실은 조사가 ''인지 ‘' 인지가 중요했다기보다는, 받침이 있는 상태로 끝나는 이름이 무언가 완결성을 갖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을 동경했다.  자체로 하나의 견고한 마감된 무엇,  온몸으로 어필한다고 생각되었다. 이름 자체로 하나의 존재성을 뿜어내고 있는  같다고 해야 하나. 제대로 매듭이 지어진 상태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받침이 있는 이름이란  바퀴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안정감이 있었다. 반면 받침 없이 끝나는 이름은 좋게 말해서 희미한 여운이 드리워진다. 문이 빼꼼 열려있다. 바퀴가  개인 자전거 같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도 든다. 닫고 싶다,  닫고 싶다~~~.




'해처럼'이라는 닉네임은 오래전 PC통신을 시작하며 스스로 선택했다.  어감이나 발성음이  감기는  마음에 들었으며 글자의 모양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받침으로 끝난다. '처럼'이라는 말이 동격을 나타내는 격조사이기는 하지만 '해처럼' 나에게 다가와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원래 '해처럼'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한국어 번역곡의 가사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렇게 해처럼은 나의 '2 이름' 되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아이의 이름 끝에는 받침이 붙어있다.  받침 하나가 주는 견고함이 때때로 파도처럼 엄마인  마음에  닿는다. 그리고 안도한다. 아이 이름에 받침이 있어 정말 다행이야... 단단한  위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튼튼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헤매고 방황하던 나의 지난날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다오. 끝까지 곁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엄마 아빠가 되어줄게. , 그런 . 그런 은유.



아이를 키우며 때로 엄마인 내가 아이의 받침이 되어주는 것이 아닌 아이가  깊은 정서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받침이 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나의 이름에 붙어있지 않은 받침이 어느새 딸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붙어있는 걸까. 나는 나이 들고 딸은 성장하여 더욱 단단해져 연약한 나의 받침이 되어주는 걸까. 그런 것일까. 나는 우리 엄마아빠의 받침이 되어주는 딸이었던가, 아니었던가.  



얼마나 많은 받침들을 딛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던가. 나는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 받침이 되어줄  있을까.... 누군가의 받침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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