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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Jun 07. 2021

<신화로 읽는 남성성He> 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야

읽기의 자율주행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를 읽다. 여성성에 대한 같은 작가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깊이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긴 글이 될 것 같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에서 소재가 되는 신화가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라면 남성성 편에서는 피셔킹과 파르시팔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피셔킹(어부왕) 전설에 대해서 얼핏 그 명칭만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일단 '피셔킹'은 '파르시팔(Parsifal)'과 떼어낼 수 없고, 또한 아더왕과 성배 전설과도 떼낼 수 없다.


​​

간단히 신화 줄거리를 보자면,

파르시팔은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기사인데, (바그너는 이를 바탕으로 '신성무대축전극'이라는 대작 악극을 남겼다)  소년(파르시팔) 16세가 되자 자신은 기사가 되겠다며 어머니를 떠나 모험을 하게 되고, 20여년간 모험을 하며 결국 피셔킹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위대한 기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저자 로버트 존슨은 파르시팔의 이야기를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입해 풀어냈다. 마치 특정 수학공식에 대입해 수학 문제를 풀어가듯이.  ​


책은 총 일곱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있는데, 각 챕터의 제목은 이러하다.


1. 피셔킹


2. 파르시팔


3. 순결


4. 성배의 성


5. 건기(The Dry Years)


6. 추녀(Hides Damsel)


7. 성배를 향한 기나긴 여정


1. 피셔킹, 파르시팔, 성배


파르시팔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인물은 '피셔킹(어부왕)'이다. 그는 어떤 실수로 상처를 갖고 평생을 살아가는 왕인데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단 한명의 기사다. 그의 상처가 회복되지 못하면 왕국 또한 회복되지 못한다. 그는 위대한 기사가 자신을 찾아와 '가장 중요한 어떠한 질문'을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통속에서.


​​


한편 소년 파르시팔의 궁극적인 목적은 위대한 기사가 되는 것이다. 16세가 된 파르시팔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히려 약간 어리석어보이는 소년이다. 그는 만류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어머니가 손수 짠 옷(일종의 속옷)을 입고서. 이후 이 옷은 파르시팔이 목적지를 우회해 먼 길을 돌아 고생스런 모험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성숙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어머니에게 불충실하지 않는한 절대 완숙한 남자로 성장하지 못한다. (본문 중에서)


​​


모험을 떠난 파르시팔은 스승같은 존재인 구르몽을 만나게 되고, 그는 위대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배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성배를 찾은 다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모험의 목적이다. 즉 '성배'는 생의 궁극적 목적을 말한다. 사실 인류 전체는 성배를 찾는 여정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2. 남성이 '여성적인 것들'과 맺는 관계들


파르시팔이라는 남성을 대리하는  존재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남성이 '여성적인 것들' 맺어가는 관계에 대해 다음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


1) 육신의 어머니 - 개인적 습성, 개성, 고유함을 제공한다.


2) 어머니 콤플렉스 - 아이이고 싶은 남성의 퇴행적 경향, 남성의 심리에 독약같은 것.


3) 어머니 원형(Archetype)- 신의 절반인 여성, 우주의 풍요로움, 자연... 이것의 풍성함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4) 아리따운 연인 - 남성 심리구조속의 여성적 요소. 내면의 동반자, '아니마'


5) 아내 또는 파트너 - 피와 살을 가진 동반자


6) 소피아 - 지혜의 근원​


어려움이 발생하는 지점은 이것저것이 뒤섞일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남성에게 아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혼동은 어머니와 아내가 합쳐지는 것. 이 경우 남성은 아내가 동반자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어머니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남성이 어머니 콤플렉스에 싸여있는 한 그는 성배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르시팔이 경험하는 모험은 모두 어머니가 짜준 옷을 벗어버리기 위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사실 파르시팔이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바로, 그는 피셔킹을 만나 그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기회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파르시팔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다시 그 기회를 갖기 위한 여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세상 거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파르시팔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점이다. 개인에 따라 성배를 찾는 여정은 다양하게 표출되지만, 16세 즈음(사춘기를 의미하는 듯) 시작한 모험에서 일반적으로 성배의 성을 다시 만나는 것은 중년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45세 전후)


3. 성배의 의미, 성배를 향한 여정


수십 년을 돌고 돌아 다시 성배의 성에 도달한 중년의(46세) 파르시팔은 피셔킹 앞에 서서 이번에는 같은 잘못을 번복하지 않는다. 그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결국 피셔킹은 치유를 얻고 왕국은 되살아난다. '피셔킹'이 의미하는 것은 영지의 진정한 왕이며, 신이 인간으로 화하여 신성이 지상에 표현된 인물임을 드디어 알게 된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인 것)


그리하여 결국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신 (혹은 성배)를 섬기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배 탐색은 신을 섬기는 일이며 우리가 이 진실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가 '행복'이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성배는 항상 우리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


여기서 특별히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파르시팔이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대답이 필요없다. 질문을 제대로 던지면 답은 이미 찾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파르시팔이 던져야할 질문은 이것이었다.


​​


"성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4.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 성배에게 행복을 달라고 요청하면 행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배와 성배왕을 바로 섬기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중략) 정신의 구심점을 자기 외부의 더 큰 것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행복은 그 결과 저절로 주어진다.” (본문 중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은 헌법 첫 머리에 '행복추구'라는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곧 행복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기에 아무도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


행복(Happiness)이라는 단어가 '그냥 일어나다' 라는 동사 to happen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며, 행복은 내면에서 저절로, 아니 정확히는 정신의 구심점을 자기 외부의 더 큰 것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상태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5. 기타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성배를 경험한다고 한다. 남성이 지척에 있는 아니 오히려 자기 안에 있는 성배의 성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는 반면, 여성은 성배의 성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거기 있음을 알기 때문에.

​​


- 남성은 필요하기 전에는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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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시팔에게 '블랑쉬 플레르'라는 '하얀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내면의 아니마를 의미하는 궁극의 여성이다. 파르시팔이 모험을 하는 동안 갑자기 어떤 트랜스 상태(각성상태?)에 빠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사랑하는 여인 '블랑쉬 플레르'만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주인공의 트랜스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하루키 소설에서 이 장면은 대개 성적인 판타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1Q84>에서 덴고가 후카에리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에서도 주인공 쓰쿠루가 비슷한 트랜스 상태에 빠져 성적인 장면 (시로, 구로)이 이어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상대가 되는 여성은 16세 정도의 소녀들이다. 신화 속 파르시팔과 블랑쉬 플레르를 차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결국 하루키는 작품 안에 세상의 온갖 신화들의 골조를 담아 그 신화들을 능숙하게 현대어로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 아닐까.

​​


- 어쩌면 삶은 단순하고 간단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를 발견한다면 다른 자잘한 것들은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 코드를 발견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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