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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Nov 10. 2021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무심코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었다. 문득 떠오르는 그 이름을 사이버 도서관에서 검색하니 딱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달의 궁전>이라는 기묘하고도 그다지 구미를 당기지는 않는 책 제목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싶었고, 주인공들의 이름이 한국 이름이나 일본 이름이 아닌 톰이니 맥과이어니(맥과이어?) 하는 그런 문장들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어쩐지 끌림이 있었다. 달에 대한 이야기였고 또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


달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 일본 소설이기는 한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과 시가 나오야의 <잿빛달>,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뜨는 두 개의 달. 최근에 읽은 것으로는 직접적인 소재는 아니겠지만 김훈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소설가에게 달은 영감을 불어넣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너무 쨍한 해보다는 해가 사라진 밤에 주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 달이 매력적인 이유는 눈에 비치는 변화 때문일까. 차고 이지러지고 다시 차는 그 변화를 지켜보는 동안 무언가 소구 하는 것이 있는 건가. 태양이 신적인 것, 태초의 것, 종교성을 갖고 있는 반면 달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미래의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폴 오스터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이런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판타지적인 출생의 비밀 대서사시라니. 겉핥듯 대충 스토리를 들으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어거지성 내용들이겠지만 그의 필력으로 묘사된 오스터적 세계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어색하지 않았다.


​​


아버지를 모르고 어린아이일 때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외삼촌의 손에서 키워진 포그라는 주인공의 파란만장 이야기, 정도로 표현해버리기에는 너무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므로. 작가는 대체 어떠한 문학적 토양 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기묘하고 신비롭다.


​​


 개의 문장들을 공책에 적었다. ​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작가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게   문장이었다.  모순 덩어리의  속에서 모두에게 던져진 생은 하나 같이 고독하지만, 오직 구원은 사랑에 있을 뿐이다, 라는 외침을 쏟아지는 빗속에 우두커니 서서 작가는 소리치고 있었던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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