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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Aug 12. 2016

한식과 한국어는 왜 세계화가 어려울까?

한민족의 문화 전략

요즘 KFood를 세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뜨겁다. 김치를 외국인에게 Try시키려는 노력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한류와 K팝의 열풍으로 한식도 손쉽게 세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신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간소한 차림에 비해 한식은 손이 많이 가기로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3시간이면 배운다는 한글에 비해 한국어는  배우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아랍어와 핀란드어 다음으로 외국인이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매우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어, 한달에 한번만 봐도 줄거리가 이해되는 한국 드라마와는 달리 한식이나 한국어는 깊이 들어갈 수록 복잡하기 그지 없다. 기실 이들의 복잡한 구성과 절차는 한민족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철학과 연계되어 있다.


때문에 한민족의 철학이 먼저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한식이나 한국어가 보편화되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라는 자탄이 나오는 작금의 현실에서 아직까지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었나 싶겠지만, 역사의 무게는 금새 지워지는게 아니다.



주역을 통해 보는 한글과 한식


한식과 한글에는 서양식 요리나 언어에는 거의 지워져 찾아볼 수 없는 철학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바로 격을 따지는 문화이다. 


한식을 보자. 한식은 언듯 자유로워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식에서 부식은 절대로 주식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어도 주식이 없으면 식사가 아니다. 우리네 옛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려 보라. 빵을 가져다 한참 먹고 나서, '이제 밥먹어야지' 라며 식사준비를 하신다.

그분들에게 빵은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식사가 아니였다. 빵이 아닌 피자나 치킨이라도 이점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간식을 먹다가가 식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추려 들었다. 밥을 깨작거리다간 한소리 듣기 좋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서양식이 보편화되면서 많이 엷어지긴 했지만, 주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국인의 식습관에서 완전히 지워진건 아니다.

그리고 같은 원리가 반찬에서도 적용된다. 소스(조미료, 양념)는 절대로 원재료의 맛을 능가할 수 없다.

다른 나라 요리에서 종종 소스맛이 원재료의 맛을 지워버리는게 허용되는 것과 달리, 아무리 맛있는 양념이라도 원재료의 맛을 훼손시켜서는 안되는 원칙이 한식에는 있다. 양념은 반드시 재료의 맛을 도와주는 역할만 허용되며 스스로 맛을 지닐 수 없다.

물론 조선 말기에 고추가루가 널리 유통되면서 한식은 매운 맛이 강한 것으로 특징화되지만, 고추가루를 넣은 요리가 보편화된 것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매운 양념을 넣는다고 해서 한식의 특성과 원칙이 변한 것은 아니였다.

한식에선 따라서 고수같은 강한 향신료가 허용되지 않는다. 향신료는 재료의 맛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되며, 또한 요리상에서 반찬들끼리 주식과 부식끼리의 서열(격) 역시 절대로 변화가 허용되지 않는다. 과거의 어르신들의 식사를 보면 아무리 7첩 반상을 차려도 간장이 반드시 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야 했고 밥과 국의 자리도 정해져 있었다. 이를통해 우리 조상님들이 어마무시할만큼 질서에 대한 '집착'을 지녔다는 걸 엿볼 수 있다.


도대체 이 격格이란 게 뭔가? 위격을 지칭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조선시대 사농공상과 같은 신분질서처럼 사물이나 관념에서도 이런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는 예법은 물론 관상이나 사주나 풍수지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장 정례화된 체계는 주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역 64괘를 보면 8괘가 상하로 조합하여 8x 8 은 64개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데, 이를 괘라고 한다. 

각 괘는 6개의 위를 갖는다. 주역은 변화를 추구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변화가 무궁할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사실이 그렇다. 주역안에 우주의 모든 변화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때문이다. 하지만 주역 안에서도 절대 바뀔수 없는게 있는데 그것은 각자의 '자리'이다.

대표적으로 항룡유회로 알려진 건괘의 6효를 보자.  5효는 왕의 자리로 간주되고 6효는 상왕이나 국가원로 정도로 간주된다. 얼핏 생각에 6효는 왕인 5효보다 연륜도 많고, 연배로 봐도 윗자리에 속하므로 왕을 좌지우지 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신하인 4효부터 천민이나 미성년자에 해당되는 1효까지 모두는 5효를 지지하므로 결국 6효는 5효를 넘어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면에 나서지도 못하므로 항룡이 되는 것이다. 항룡은 잘난체를 하게 되면 결국 5효의 미움을 받고 1~4효의 외면을 받아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그래서 항룡유회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었지만, 주역에서 각효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부여받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왕은 아무리 못나도 왕이며, 하급관료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중간실무자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주역에서 정하는 위격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변효가 되어 주역의 괘가 바뀌기는 하지만, 이는 주역이라는 책에 나온 바는 아니고 주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해설이므로 본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이 주역을 만든이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이 중국사람(?)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주역의 가강 근간이 되는 음양사상을 체계화한 이는 우리민족인 태호복희씨이다. 우리가 ~씨하는 호칭을 만든 사람도 태호복희씨이고, 인류역사상 최초로 결혼식을 한사람도 이 분이고, 여하튼 말하자면 엄청나게 인류사에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다. 그리고 태호복희씨가 동이족(한민족을 지칭)이라는 사실은 이미 대다수 중국 역사가들도 흔쾌히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삼황오제가 모두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겐 매우 분하겠지만, 우리가 가부장제라고 부르는 가족제도를 만든 분도 이 분이다. 태호복희씨는 약 5600년 전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니, 최소 주역이 한민족에게 영향을 끼친 역사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5000년 이상인 셈이다. (물론 주역이라는 책은 공자시대 혹은 그 이후에 전국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뭐 그때부터 쳐도 2000년이 넘으니까 유교나 불교, 기독교 역사는 진종호 앞에서 사격하는 수준이 되겠다.)


실제로 이런 격을 중시하는 문화적 바탕은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러우며 뿌리깊다.

가령 조선시대는 사농공상을 주장했는데 이 사농공상 역시도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무역이 수지가 남아도 그 GDP 총액은 절대로 공업을 앞지를 수 없고, 당연히 농업보단 한참 아래여야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 상업이 활성화될리가 없다. 세계사에서 산업혁명이나 자본주의의 토대가 상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산층에서 촉발된 것을 보면 우리 후손들은 입맛만 떨떠름할 뿐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집안에서도 가장은 가장이고, 자식은 자식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흔히들 유교적 관습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공자왈 맹자왈 이전에 주역의 위격에서 더욱 깊은 근간을 두고 있다.

한국어도 주어와 목적어에 따라 조사를 달리해야하는데 이는 앞어 언급한 한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위격을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높임말이 발달한 것도 같은 원리이다. 

그리고 한국어에서는 사물이 주어가 되거나 높임말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역시 같은 위격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물이 주어가 되는 표현은 모두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온 표현으로 한국어에는 원래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어의 격을 모두 조사나 어미로 표현해줘야 하고 목적어 역시 목적어에 맞는 조사나 어미를 달아줘야 하며 동사역시 주어와 목적어에 따라 격을 맞춰주야 하므로 언어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유머 소재로 사용하는 "아버지 밥 쳐 먹어" 라는 표현이 한국어에서 존재할 수 없는 말이 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한국어 문법과 맞춤법은 작가들끼리도 서로 물어봐야 할만큼 복잡하다. 한국에서 맞춤법을 하나도 안 틀리고 책 한권을 쓸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심한 과장이 아닐정도이다. 전문가인 작가가 책을 써서 출판사에 주면 출판사에서 적어도 몇 군데 이상은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찾아낸다. 때문에 어떤 경우는 교정을 보느라 작가가 쓰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왜냐면 같은 단어도 앞뒤 쓰임에 따라 다르게 써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도에서 유래되어 복희팔괘라 불리는 선천팔괘 배치도, 도서관이라는 말의 어원은 하도를 보관한 장소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무조건 한글이 우수하니 한국어를 배우라고 외국인에게 홍보하고, 한식이 건강에 좋고, 한식을 많이 먹으면  한국 연예인처럼 미인이 된다고 아무리 광고해도 한국어와 한식은 세계화에서 한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식과 한국어가 세계인에게 더욱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한민족의 철학과 이념이 먼저 알려져야 한다.

하지만 국민에게 역사를 최대한 안가르치려고 하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현실에서 이런 깨어있는 자각이 발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존에 있는 역사와 철학만 파괴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게 현 우리나라 (일부) 지도층의 정신상태이니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나 지도층이라면 주역정도는 기본교양으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게 반아나이다. 뭐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미신에 활용되는 책을 뭐하러 읽느냐고 반문하면 대꾸할 가치를 못느끼는 사람도 반아나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컴퓨터와 원자이론에 주역의 원리가 반영되었다는게 이미 서양과학사에서도 상당수 인정되는 상황에서 반아나 정도의 국뽕은 권장할 수준의 '뽕'이 아닌가?

물론 이에 대한 생각은 여러분의 자유이다.


한민족의 근간에 깊이 뿌리내려 세종대왕도 없애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철학,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위에 언급된 면만 보자면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를 아무리 비난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철학도 한식은 물론 한글, 한국어, 한국 게임 등과 함께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한류스타,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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