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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Jan 02. 2016

화장을 고치는데 필요한 시간

<65초 소설>

-오빠, 오늘 일 좀 쉬면 안될까요?


한시간 전에 내 휴대폰에 찍힌 문자다. 나는 40분 넘게 이 문자에 답을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전화할 짬이 났다.


받지 않는다. 민진이 이년.

나는 문자를 보내 보았다.


-왜? 이유를 말하면 쉬게 해줄께.


나는 문자를 한 번 더 보냈다.


-너 오늘 밤이 대목인거 알지..?


띠릿 바로 답장이 왔다. (일부러 전화 안받았구나. 이 오라질년.)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요.


나는 직감이 띠리리 온다. 바로 민진이에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한참 후에 민진이는 전화를 받는다.


"너 남자친구 생겼니?"


대뜸 물었다. 과연 우물우물 바로 대꾸하지 못한다. 다시 캐묻는다.


"너 그날도 아닌데 왜 그래? 남자친구가 일 나가지 말래?"


민진이는 마침내 대답을 한다.


"남자친구가 생겼는데요. 제가... 이 일하는 걸... 몰라요. 더구나 저녁 늦게 같이 있고 싶데요.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래 민진아. 오빠가 너 남자친구 생겼다고 간섭하겠니. 그런데 이 말 한 마디만 할께. 남자친구가 너 빚 대신 갚아줄거 아니잔아. 너 몸 아프다고 쉰 적이 없다. 오빠 기억엔. 그치? 너 빚 갚아주는 건 나야. 너 손님들이고. 몸 팔아야 한푼이라도 벌거 아냐? 너 오늘 피크인거 알지? 크리스마스라고 거리에서 여자 꼬셔볼려고 왕창 나온 팔팔한 남자애들. 절반은 우리한테 오게 되있어. 게네가 너 빚갚으라고 돈주는 애들이야. 너 남자친구는 널 꽁짜로 먹으려는 놈이고."


나는 숨쉴틈 없이 바로 말을 따박따박 이어갔다.


"민진아, 나 인간적인 사람이야. 너 남자친구 생긴거 좋지.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 민진아. 안 그래? 너도 남자 사귀지 말라는 법 없지. 그렇지만... 너무 마음 주지 마라. 그냥 서로 엔조이일 때가 좋은거다."


"남자친구가 이 일하는 거 싫어해요. 혹시나 거릴 돌다 남친 아는 사람 만날까 겁도나고..."


"아니!"

나는 화부터 난다. 이 장사 일이 년 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걸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돈 벌자! 민진아, 남잔 많어. 너 맘하고 다를거다. 그런 남자가 오래 갈것 같니? 생각 바뀌면 늦게라로 문자 넣어라."

나는 화를 눅이고 일단 다른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밤이 늦도록 민진이는 문자를 주지 않았다. 젠장 불경기라더니 그 짓할 돈은 다들 꽁쳐두나 보다. 전화는 불이 나고, 일 나간 나가요들은 그만 좀 뛰자며 좋아서 그러는 건지 힘들어서 그런건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었으며, 나는 기다리는 손님들 얼르느라 진땀을 뺏다. 그래도 큰 사고 없고 다친 여자애도 없어 연말 장사는 원만하다. 평소라면 대여섯 탕을 뛰었을 민진이가 없어서 서운했지만, 기집애들 전우애는 있어서 연말에 몸을 안 사리고 불 질러주네. 나야 고맙지.


다음 날도 고 다음날도 벌이는 꽤 쏠쏠했다.

민진이에게 문자가 온건 31일 12시가 조금 지나서이다. 오빠 나 다시 일나가도 돼?


나는 두말 없이 답장을 했다. 음 1시반에 한건 있는데. 서울대 후문쪽. 나갈래?


-오빠, 나 화장이 지워져서 좀 걸릴거 같아. 그 다음 건은 없어?

-그래라. 오빠가 좀 이따 봉고 거기로 보낼께.


종료버튼을 꾹 누르며 나는 중얼거린다. '그래 민진아. 화장은 천천히 고쳐도 좋아. 파운데이션을 꾹꾹 눌러 덧바르며 느끼기 바란다. 이 거리에서, 진정 너를 아껴주는 사람은, 오직 이 오빠라는 라는 걸 말이야.'


난 전화기를 바구니에 던져넣는다. 바구니엔 전화기가 가득하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곧 바구니 안에 전화기들이 연달아 울려 대겠지.

나는 한 시엔 찜질방 사우나에 좀 누울 참이다. 운전은 영수가 잘 하겠지. 사업은 계속 되어야 하고, 우릴 찾는 남자는 많으니까. 거리엔 눈발이 희끗히끗 날리지만, 텅 빈 도로를 달리기엔 아무 문제가 없다. 차창에 낀 성애만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다.




65초 소설은 50초 동안 읽고 15초간 생각해 보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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