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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Feb 01. 2016

(2분소설) 황금 노을

스타밸리 녹색연구소는 2003년 미국정부와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벤처투자 회사들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벨 박사가 여기와서 반한 건 미국인들의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넉넉한 돈 씀씀이 보다는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였다.

정부지원은 곧 중단되었고 벤처투자자들은 어려운 용어가 적힌 법률 서류만 매달 보내왔다.

가득이나 에너지 관련 어휘와 일상 회화를 제외하고는 영어가 서툰 벨박사에게 법률서류는 일종의 연하장처럼 느껴졌다. 서류는 그렇게 인사를 묻곤했다.

"학문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나라로 온 것을 환영한다, 이 멍청아!"


하지만 그들은 벨박사의 학자적 집념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벨박사는 수소연료 전지 성능을 높여줄 티타늄 분자의 황금비율을 찾아내는데 성공했고, 연이어 티타늄을 규소 분자로 대체해내면서 경제성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젠 벨 박사가 벤처투자 자문단에 연하장을 보낼 차례가 되었다. 사실 그럴 필요까지고 없었다. 금새 그의 신기술은 동료 학자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이젠 누구의 지분도 남아 있지 않은 스타밸리 녹색 연구소엔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투자자와 그들이 대동하는 컨설턴트들의 실사 방문이 예정된 날이다. 벨박사는 아끼는 브라질산 원두를 모닝커피에 아낌없이 다 쏟아 부어 커피를 내렸다. 벨 박사의 경험에 따르면, 돈과 관련된 어떤 예측도 벨박사의 기대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늘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면 일주일은 돈 걱정을 덜해도 좋으리라. 물론 실제로 자금집행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는 걸 모르는 벨박사는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학문밖에 모르던 벨박사를 혹독히 단련시켰다. 특히나 캐피탈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선 논문이라도 쓸 지경이다.

그 논문 첫 줄은 이렇다.

Capital: 인간을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게 했다가 추락시키는 마법 빗자루. (주의) 착륙 안전장치 따윈 없음.


연구소의 얼마남지 않은 직원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다들 오늘 무슨 스케줄이 잡혀있는 줄 알테지. 벨 박사가 짐짓 들뜬 모양을 감추려 애쓰느라, 복도의 청소 상태를 둘러볼 시간을 써버리는 사이에 투자단은 벌써 현관에 들이 닥쳤다.


-벨박사님. 영광입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미하일 CFO님?

-아닙니다. 마크라고 불러주세요. 수석연구원입니다. 이쪽은 G.F.E 소속 이사님과 연구원이시구요. 다른 분들은 차차 알게 되실겁니다. 영어가 서툴르시거든요. 바로 미팅을 시작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기대보다 방문단의 숫자는 단촐했고,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급하게 PT를 서둘렀다.

3년 동안 벨박사와 연구를 같이해온 칼의 발표는 더더욱 엉망이었다.

하지만 마크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이제 비지니스 얘길 좀 해야할 텐데요. 박사님과 직접 얘길 나눠도 되겠습니까?


벨박사는 기가 한풀 꺽이는 기분이다. 뭔가 헛점을 찾아냈을테고, 투자에 조건부를 걸어서 자신들의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겠지. 벨 박사는 돈과 관련된 복잡한 절차들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 경제성 부분인데, 학회에 발표된 거 말구요 실제 비용부분은 어떤가요?

- 실제론 더 좋습니다. 학회에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가장 결과가 좋은 표본은 빼고 산출했죠. 기존 수소연료전지 대비 효율이 40%이상 우수합니다. 소형화가 가능하구요. 이대로라면 30년 뒤엔 자동차 엔진보다 작아질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정이긴 하지만.

-네 저희도 잘 알지요. 가장 궁금한 건, 시제품화 할 때까지 필요한 기간인데요. 얼마나 진행이 되있을까요?

- 거꾸로 제가 묻고 싶군요. 성능과 안정성을 실제 판매할 정도의 수준까지 해내기 위해선 연구비가 절실합니다. 얼마를 투자하시냐에 따라 달려있지요. 자금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생산공장을 지으면서 테스트를 동시진행 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2016년에는 아마 주요소 대신 수소전기 충전소를 캘리포니아와 일부 선진국에 지어줄수 있죠. 아마 미국보다는 원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더 빨리 도입할수도 있겠죠. 이상적인 수치를 제해도 5~6년이면 됩니다. 내년 2010년을 수소 산업의 원년으로 선포해도 될 정도이지요. 모든 가정은 투자해주신다는 전제 아래 말씀드리는 거지요. 2020년이 되면 원유와 정유 관련 기업의 절반은 문을 닫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르게 말하는게 낫겠군요. 공기오염을 확기적으로 줄여줄 녹색에너지 세상이 되는거죠. 탄소가스라는 말을 모두 다 잊게 돨겁니다. 십년 뒤에는 말이죠. 그리고....


벨 박사는 마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기 쉬운 징조였다. 적어도 그의 경험에 따르면.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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