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나는 가끔 글이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면 밤중에 PC방을 찾곤 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릴 때면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가 어느 밤 충동적으로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살인 장면에서 글쓰기를 떠올리는 것이 이상하다. 너무나 다른 행위기에 둘 사이에 연관성을 떠올리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미 연결고리를 하나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생각해보면 충동적인 글쓰기는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영하 작가가 언급한 것과 같이, 내 안의 괴물이 드러나는 순간일지 모른다. 도스트예프스키가 라스콜니코프를 탄생시키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험버트라는 인물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글쓰기가 되면서 괴물의 발현은 하나의 메타포가 되고 사회적 용인을 얻는다. 물론 그 시절 내 글쓰기는 위험한 괴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PC방에 가서 앉으면 멜론을 실행하여 음악을 틀고 싸이월드 미니 홈피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글을 쓸 때 들었던 고유진의 ‘걸음이 느린 아이’, 플라워의 ‘오빠는’, MC THE MAX ‘사랑의 시’, 버즈의 ‘겁쟁이’같은 노래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그리고 이외수의 시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이 어찌 그리 가슴에 사무치던지 모르겠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향수로 남아 있을 시기다. 그리고 그런 감수성은 역시 20대 초반, 날 것 그대로의 그 시절이 아니면 온전히 느낄 수 없다.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넝쿨처럼 내 몸을 휘감아서 몸살이 되더라
이 구절이 어찌나 와닿았는지 읽었을 때의 서늘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화자는 ‘몸살이 되더라’를 반복하여 두 번 말하며 애틋함을 더한다.
그 시절의 감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수업에 대해서 생각한다. 최근에는 좀처럼 그런 일이 없긴 하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치는 것은 나에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무아지경에 빠져 글을 써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시간에 갑자기 수업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나는 그런 적이 없다. 특별히 공개수업이 아닌데 그 이상의 노력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캠코더로 촬영한 적은 있지만, 그건 수업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나만 그런가? 아니면 수업이란 것은 본디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일까? 예전 거제에서 기껏해야 경력 2~3년이던 시절, 연구회에서 만났던 한 선생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수업을 준비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수업 사례 나누기를 하면 혼자서 30분 혹 그 이상을 나누기도 했다. 반면 나는 수업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소통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 연구회에 참여했다. 그 선생님은 수업이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충동을 느꼈을까? 아니면 내가 스무 살에 글쓰기에 대해 느끼던 그런 감정과 같은 것이, 그 선생님에게는 그때 찾아왔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수업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 나에게 수업은 그 자체만으로 가슴 뛰게 하는 어떤 것은 아니다. 어느새 수업은 일상이 되었고 구태의 함정에 빠지는 날이 많다. 내 욕망, 이를테면 글쓰기를 수업과 연관시켜 일과 욕망의 방향을 일정하게 하려고도 한다.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수업으로 독립 잡지를 만드는 일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는, 말이나 글은 힘이 없다. 그래서 때로는 말을 아껴야 할 때도, 크게 한번 말하고 글로 써서 저질러 버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