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참 겸손하세요.”
2년차부터 지금까지 17년째 몸담고 있는 연구회 모임에서, 작년에 한 가지 발표를 한 후 들은 말이다. 사실 글자 그대로라면 내가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 나는 그렇게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자율 탐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작년 1학기 때 인디스쿨에서 탐구클럽 0기에 참가한 후 그때의 경험이 좋아서 2학기에는 내 스스로 다른 주제를 정하여 탐구를 하고 그 결과를 연구회 모임에서 발표한 것이다. 1학기 때는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생활교육에 대해, 2학기에는 내가 조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글쓰기 교육에 대해 탐구했다. 사실 작년 1학기 때 인디에서 할 때나 2학기 때 스스로 할 때나 탐구 자체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상의 일에 치여 책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계획한 만큼 충분히 갖지 못했고, 주제도 쉽지만은 않았다. 생활교육은 아무래도 학생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기에 단기간의 탐구로는 어려운 면도 있었고, 글쓰기 교육은 미루기만 했던 이오덕 선생님과 이호철 선생님의 책을 읽기는 했으나 생각만큼 실제 적용할 만한, 명확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삶을 가꾸는 글을 써야 한다’ 는 이 말이 모든 것의 결론이었고,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방법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 발표 때 다른 선생님이 나에게 겸손하다고 한 것은, 평소에 내가 실천하는 것을 그리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어떤 면에서 겸손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스스로 높이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내 성격이나 습관적인 말투 때문이다.
학생들의 결과물을 소개할 때 어떤 분은 아주 대단하다고 소개하는 분이 있는 반면, 나같은 경우 같은 수준이거나 그보다 더 좋은 수준의 결과물인데도 주로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고 소개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기준과는 별개다. 사실 둘 다 대단한 것일 수도 있고 둘 다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 성격이나 성향이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기에 부족한 부분을 잘 아는 것도 나다. 부족한 부분을 뻔히 알기에 마냥 높이 평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는 어쩌면 내가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이거나 일의 좋은 점보다는 부족한 점에 더 집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이런 점은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어떤 선생님들은 그런 것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고 대단한 평가를 하지만, 나는 ‘뭐 그리 대단하게 의미를 부여할 일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주로 학교에서 야당 느낌의 포지션을 고수하는 것일까?
사실 내 이런 평가는, ‘내’가 하는 일이 ‘우리’가 함께하는 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과 별개로 이런 태도는, 내 스스로의 발전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일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내가 나 스스로 내 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내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는가?’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긴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느끼는 것은 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면 때문이기도 하다.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행복에 다가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내 일에 더 자신감을 갖고 좋은 가치를 부여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이고 그에 이르는 길은 안개 속이다. 그래도 그에 가까운 것을 찾고자 한다. 일상에서 좋은 것, 그중 하나가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