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을 뒤로 했음에도 오랜 시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추석 즈음 북상하던 태풍이 대만으로 가 버리면서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함께 가져 갔다. 처음에는 얇은 바람막이 자켓을 입었다가 손에 들었다가 했다. 바람막이 자켓 대신 조금 더 두꺼운 후드자켓을 입게 되었다가, 오늘은 얇은 가디건 위에 더 두꺼운 후드자켓을 입게 되었다. 가을도 이렇게 가 버리는 건가 싶은 날이다.
짧고 덧 없이 지나가 버리는 봄과 가을을 시인들은 주목한다고 한다.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 가을을 보내기 전에 글 한 편 쓰지 않을 수 없다.
올 가을을 맞이하던 초입까지는 가을 정취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창녕 화왕산을 10여 년만에 다녀왔다. 암릉구간을 오르며 등산하는 맛이란 걸 온몸으로 감각했고, 사람 키 보다 크게 자란 억새 무리 사이를 걸었다. 저도 비치로드에 가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고, 고성 좌이산 정상에서 270도 가량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기도 했다.
등산 이후에는 항상 커피를 마셨다.
봄을 생각하면 막걸리가 떠오르지만, 왠지 가을에는 따뜻한 커피가 더 와닿는다. 등산을 마치고 노곤한 몸으로 카페 의자에 기대 앉아 마시는 커피보다 좋은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그러나 창밖으로 저도연육교가 보이는 바다와 카페에 앉아 통창으로 바라보는 창녕의 한적한 도로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맛이 어떤지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
또 한 가지, 가을에 마시는 커피는 뜨거워야 제맛이다. 머그잔을 감싼 두 손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식도를 따라 흘러가는 커피는 내 속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서서히 식어가는 커피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차가워질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쓴 거피 맛만큼이나 진한 아쉬움을 준다.
가을 또한 항상 아쉽다.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가을에는 대체로 바쁘다. 가을을 마주할 시간이 부족하다. 학습연구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좀 다를까 싶었지만, 방송통신대학교 중간과제와 학습연구년 보고서 작성으로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9월 한라산 산행 때 삐끗한 발목 상태를 만만히 봤다. 이튿날도 몇 시간을 걸었고, 제주도를 다녀온 이후에는 산행의 매력에 푹 빠져 발목과 무릎을 혹사했다. 결국 한 달 가량 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시간 속에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오늘 입동에 이르렀다. 입추와 처서는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속수무책이었으나, 입동만은 그 본질을 잃지 않은 듯한 하루였다.
이 가을이 더디게 지나가기를…, 남은 가을의 나날은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