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리 Jun 20. 2017

단순해질 때까지 빼고 또 빼라

<빼기의 법칙> '4차 산업시대의 생존코드'

어떤 대상이 단순하다는 것은 판단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표현된 정보의 양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건 일단 쉬워 보인다. 생각할 수 있는 가짓수가 그만큼 한정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단순함이 가지는 간결함이다. 전달하는 내용이 길고 복잡해질수록 상대방은 집중력에 한계를 드러낸다. 반면 아무리 복잡한 내용도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이해도가 높아진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지식을 자랑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다. 상대의 이해를 빠르고 쉽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개인 사이에 친밀하게 나누는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절실한 것이 단순함의 간결성이다.


단순함의 간결성을 이루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빼고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빼고 또 빼야 한다.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운’ 노력의 대가는 크다.

다음 4개의 문장이 설명하고 있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 1974년생, 올해 한국 나이로 44살이지만 여전히 동안童顔인 늙지 않는 고양이

▶ 자산가치 약 1조 5천억 엔(약 20조 원)

▶ 담배와 술을 뺀 나머지 모든 종류의 산업에 두루두루 쓰이는 캐릭터

▶ 빌 게이츠가 2000년대 초반 6조 원에 디지털 판권을 사고자 했으나 거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양이 캐릭터 ‘헬로키티’이다. 놀라운 건 3년 전 여름에 이 캐릭터를 고안한 일본 디자인 회사 산리오Sanrio가 당초 동물이 아닌 사람(어린 소녀)으로 만들었다고 실토를 했다는 점이다. 양쪽 볼에 나 있는 세 가닥의 털은 귀 밑의 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세상은 사실(fact)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키티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여전히 정체성은 고양이로 살아가고 있다. 당시 미국의 개 캐릭터인 ‘스누피’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개 캐릭터에 맞서기 위해 다른 종인 고양이로 기획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일본 사람들은 특히 고양이를 좋아한다. 키티Kitty라는 이름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한 하얀 고양이 이름을 따왔다.




헬로키티는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헬로키티는 산리오Sanrio의 디자이너 시미즈 유우코가 고안했다. 처음엔 산리오도 디자이너 시미즈 유우코도 이 캐릭터의 성과물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장차 완성될 캐릭터는 그저 저렴한 비닐 동전 지갑 겉면에 인쇄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캐릭터에는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물론 규모야 어쨌든 대중 앞에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미즈 유우코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작업을 했다. 어느 정도 완성을 하고 나니까 너무 단순해서 성의 없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오른쪽 귀에 빨간 리본을 달았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이름 없는 고양이 캐릭터는 의외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름 없는 고양이를 딱히 뭐라 부를 수가 없자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주인공이 기르던 하얀 고양이 ‘키티Kitty’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키티가 예상외로 인기를 끌자 산리오는 그 후 키티의 쌍둥이 여동생 미미를 비롯해서 아빠, 엄마 등 가족 캐릭터를 5종이나 새롭게 추가했다.


이때 헬로키티라는 제품군을 칭하는 명칭이 생겼다. 그 중 처음에 만든 고양이는 키티화이트로 불렸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키티화이트의 그늘에 가린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 오늘날에는 키티 하나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키티화이트를 헬로키티로 부르는 게 일상화 된 것이다.


이제 40대 중반이 되는 헬로키티는 각종 첨단 문화산업의 치열한 각축전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헬로키티가 대중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 주요한 요인은 한마디로 **단순함에 있다.


헬로키티

----------

** 실제로 '헬로키티' 를 만든 시미즈 유코가 2016년 7월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캐릭터·라이선싱 페어' 에서 헬로키티의 장수인기 비법을 본인 스스로 '심플함'이라고 했다.


헬로키티는 없는 게 있다.


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작은 두 눈, 동글동글 넓적한 얼굴에 쫑긋한 귀, 통통한 몸매의 키티는 어떤 느낌을 줄까? 무엇보다 입이 없는 것은 어떤 의미와 효과를 줄까? 입이 없다는 것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결국 듣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사물과 인형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자연스럽게 역할 놀이를 하는 어린 소녀들은 키티가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어른들은 TV를 보지 마라, 찌찌 먹지 마라, 밖에서 너무 많이 놀지 마라… 등 온갖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는 훼방꾼이다. 오죽하면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나는 니가 좋구나~’ 하는 동요가 나오겠는가!


디자이너 시미즈 유우코가 의도적으로 입을 그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인들의 아기자기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특유의 문화를 생각했을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아네사마 인형’이라고 하는 색종이 인형이 있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종이인형은 팔과 다리 없이 얼굴과 몸통만 있는 게 특징이다.


아주 오래 전 10대 시절에 일본 여자와 펜팔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물로 책갈피 두 개를 받았다.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은 인형이었는데, 팔이나 다리가 없는(생략된) 단출한 디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 인형을 자세히 보면 얼굴의 이목구비 또한 절대 과하지 않고 최소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디자이너 시미즈 유우코도 이런 일본 문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 어쨌든 세상에는 의도치 않았거나, 모르고 한 행동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을 때가 있다. 바로 헬로키티가 그런 경우다. 입이 없는 키티의 귀가 더 도드라지게 보이고, 작은 눈은 왠지 슬퍼 보이기도 한다. 크고 화려한 눈에 늘씬한 몸매의 인형에 비하면 결점 투성이인 키티에게 왠지 자꾸만 관심이 간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왜 바비 인형처럼 키티와 정반대인 캐릭터는 사랑을 받는가?” 그것은 인간 마음의 한 영역을 차지하는 또 다른 포지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재의 자신보다 더 예뻐지고 싶고,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마징가, 태권 V, 슈퍼맨, 베트맨 등이 변함없이 인기가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로 받고 한없이 기대며 마음을 편하게 나누고 싶은 대상도 필요하다. 헬로키티는 그런 면에서 후자에 속할 것이다. 완벽주의자보다는 뭔가 부족한 사람에게 마음이 다가가는 것처럼, 아이들도 뭔가 부족해 보이는 헬로키티가 좋은 것이다.


나는 가끔 그림을 그리는데, 사실적으로 자세히 그리는 것보다 간결하고 뭔가 모자라게 그리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복잡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보다 쉽고 간소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수준 높은 단계라 믿는다. 편집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수 백일 동안 찍은 필름을 단 2시간 분량만 남기고 버려야 하는 영화감독일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고를 쓰고 나서 내용을 늘려 나가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일이 더 어렵다.


“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we grow up.”

- Pablo Picasso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하면 어린이처럼 예술가로 계속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


복잡하면 일단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 폐단은 본질을 가리는 데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알려질 기회조차 사라진다. 본질이 없는 게 아니다. 보지 못하도록 가려질 뿐이다.

일의 완성도는 복잡성과 반비례한다. 뭔가 복잡해 보인다면 아직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이다.


피카소는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림을 표현하는 데 자신의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 원래 어릴 적 가졌던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잃어간다. 우리는 부족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넘쳐서 문제다. 무언가를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흘러넘치는 것들을 빼야 어린이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히든카드로 나만의 매력도를 높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