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나 Oct 23. 2021

아빠를 잃다

예상치 못한 영원한 이별의 기록

멍하니 앉아 있으면 그 순간이 확 떠오른다.

무덤덤함을 최대한 감추려는 표정으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늘 최악을 이야기하는 의료계의 그저 그런 문구라 생각했다. 돌아가실 리가 없잖아. 이겨 내실 거야. 내 아버지가 이렇게 쉽게 삶의 끈을 놓을 분이 아니지. 괜한 말로 겁을 주네 등등등. “괜찮을 거야”라는 한 마디로 응축될 수많은 문장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혹 돌아가시면 어쩌지?라는 불길한 생각이 스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끌어온 나의 나약함을 비난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다. 딸이라면 응당 아빠를 믿어야 했다. 떨어지는 혈압과 심박수를 단박에 끌어올릴 분이 바로 내 아빠라는 사실을 믿고 또 믿어야 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을 짓밟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과 상관없이 현실은  현실적인 결과를 낳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으니 연락하실 분이 있으면 빨리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에게 담당 의사는 최후통첩을 했다. 연락을 하라니…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지금 연락해서 시간 내에 여기에 오실 분이 계시긴 한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저들은 그냥 최악을 이야기하는 거고 아빠는 곧 일어나실 테니까.


또 이렇게 담당 의사의 마지막 한 마디는 외면당했다. 저들이 간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는 듯이 엄마와 나는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우리가 힘을 내야 한다면서 구내식당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르니 식사부터 하시라는 담당 교수의 한 마디에 괜한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중환자실 문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희망으로 포장하고 또 포장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나오고 네 숟갈 정도 먹었을 무렵이었을까. 원내방송이 울렸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2 심혈관중환자센터 코드 블루


설마설마했다. 아빠일 리가 없어. 우린 그냥 밥 먹고 간병이라는 긴 싸움에 대비하기만 하면 돼. 괜한 원내 방송에 불안해할 필요 없어.

불현듯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에게 오늘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때문에 저희가 너무 바빠서 말씀하신 서류 준비가 늦어졌어요.”라고 말한 의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말한 환자가 우리 아빠라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쉴 새 없이 오고 갈 때 엄마 전화가 울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 분, 지금 어디 계세요?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그토록 부정했던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아빠의 심장이 힘차게 뛰길 바라고 바랐던 나의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정신조차 없었다. 무감각한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아니, 다리가 나를 끌고 갔던가?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의사는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서두를 수 없는 절차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차분함이 싫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3월 12일 새벽 6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전 날 심혈관 조영술 시술로 떨어진 혈압 때문에 다시 중환자실로 향한 아빠에게 한 차례 심정지가 왔고 심장 마사지로 겨우 심장이 뛰고 있지만 또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보호자가 빨리 와 주셔야겠다는 전화였다.


아빠의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먼저 출발한 엄마와 전화 통화가 원활하지 않았는지 병원 측은 나에게 전화했다. 지금 당장 에크모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크모 사용 동의와 함께 관련된 여러 합병증과 비용 설명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내용을 생각할 겨를 따위 없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네, 해 주세요”라는 대답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통화 후, 최악의 상황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지만 “믿음”과 “희망”이라는 단어로 밀어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니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불길한 생각이 불길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생각의 확산을, 그 방향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그것뿐이니까.


나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심혈관센터 대기실에 앉아 계셨다. 피곤한 듯했지만 의연히 지금의 고난을 마주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축 처진 어깨나 고개를 숙인 모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리며, 심각했던 상황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도 안으로 들어간 아빠 얼굴을 잠깐 보았을 뿐 스텐트 시술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저 그렇게 대기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이 고비만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이 초조함이 무색함으로 얼굴을 들지 못할 때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보호자를 찾을 여유도 없다는 듯한 의사들에게 둘러 쌓인 아빠 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 사이에는 에크모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가운 에크모 상자에서 나온 여러 줄기의 튜브가 아빠의 신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며칠 전 농담을 주고받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상태의 환자였다.


“환자”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그저 우아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타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환자”라는 단어는 칼이 되어 꽂혔다. 에크모를 단 중환자의 모습을 한 아빠를 본 순간 직감했다. 난 “중환자”라는 단어와 타협조차 하지 못할 가장 불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후의 기억은 영상이 아닌 스냅숏처럼 각인되어 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만 닦고 있는 내 앞에 담당의사가 나타났다. 아빠의 현 상태를 설명해 주겠단다. 금세 흐려지는 시야를 옷소매로 확보하며 중환자실에 들어가 지금까지의 시술 내용과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텐트 시술 영상 및 CT 촬영 영상물을 살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아빠의 심장도 뇌로 향하는 혈관도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같기만 했던 증상이 하나하나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구내식당에 울려 퍼진 “코드 블루” 원내방송은 그나마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을 여지없이 낚아챘다. 심장마시지를 했지만 심장은 뛰지 않았고 이 이상의 처치는 아빠를 더 힘들게 할 뿐이라고 담당 의사는 설명했다. 믿고 싶지 않은, 있어서는 안될 현실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밀려왔다. 의사의 안내를 받고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러 갔던 그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 엉켜 있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반사적인 움직임(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들어 올리는 정도의)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료진이 안내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눈에 들어온 건 거칠게 닦인 핏자국이었다. 잔인한 현실은 그렇게 내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아빠와 완벽한 이별을 하고야 말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