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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Aug 24. 2017

펑크족의 신념

매미의 일생에 대하여 


쾅하고 유리창에 무언가 부딪혔다. 바리스타는 놀라서 등 뒤에 유리를 확인했다. 내 옆에 앉아 집중해서 책을 읽던 경선언니도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었다. 


매미였어. 매미가 유리에 부딪히고 떨어졌어.


모든 상황을 목격한 내가 말했다. 바리스타는 다시 한 번 등 뒤에 유리를 돌아봤다. 매미 한 마리가 배를 보이고 누워 몸부림 치다가 겨우 겨우 땅을 짚고 있었다. 아, 잘했다 매미야. 하마터면 너가 배를 내민채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뻔 했잖니. 겨우 겨우 몸을 뒤집은 매미는, 그러나 날아가지 않았다. 한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죽을 때가 된 매미인가봐.


올 여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니 키큰고기압의 영향이라던데. 키 큰 남자를 유독 좋아하는 어떤 친구는 역시 뭐든 키가 커야 좋다며 키큰고기압을 예찬했었다. 여튼 그 고기압 덕분에 열대야며 폭염주의보며 작년보다 1/2로 줄었다지. 창 밖에서 늦여름의 선선한 저녁 바람을 쐬고 있을 매미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찬란한 여름이 예상보다 빨리 가을에게 잡아먹히는 중이었다. 사랑을 나눠야할 뜨겁고 강렬한 매미의 여름을 키큰고기압이 뚜벅뚜벅 즈려밟고 지나가는 중이다. 8월 말의 저녁은 벌써 선선해졌다. 그렇다는 건 저 매미도 곧 여름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는 거겠지. 불쌍하다. 너, 짝짓기는 한 번 해봤니? 짝짓기는 해보고 죽어야할텐데.


 내 전남친이 그랬는데, 매미가 진짜 펑크족이래. 


경선언니가 말했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내 대로변에서 크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농담을 주고 받았었다.


쟤네 꼭 "한 번만 하자! 나랑 한 번만 하자!" 라고 외치는 것 같지 않아? 


워낙 야한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나와 친구는 자지러지며 좋아했었다. 우리는 매미의 삶이 부럽다고 말했다. 뜨거운 여름에 태어나 몇주간 짧게 강렬한 쾌락을 좇으며 살다 가는 삶. 경선 언니 말대로 세상 제일의 펑크족이라 할 만 하다. 오직 번식을 위해 태어나는 삶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참 단순하다. 오늘은 뭐먹지, 내일은 뭐입지, 토라진 애인의 마음은 어떻게 풀어주지부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자녀의 교육을 어떻게 할지까지. 고민할 거리만 길게는 100년치인 인간에게 매미의 삶은 어쩌면 하찮기까지 하지 않나. 당신의 동생이 매미처럼 산다고 생각해봐라. 오직 누군가랑 잠자리를 가질 궁리만 하는 동생이 있다면 뒤통수를그 쳐주며 "그렇게 살지마 새끼야"라고 말해주겠지. 그런 동생들 수 만마리가 자동차 소리보다도 큰 소리로 "나랑 한 번만 하자!"고 외친다면. 와, 이건 6.8혁명도 못 따라올 자유로움이다. 


EBS 지식채널e <나는 울지 못합니다>


그렇게 매미의 삶을 실컫 비웃어주고 집에 돌아와 매미에 대한 한 영상을 봤다. 젠장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영상은 매미의 일생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매미들은 나무에서 태어나는데,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땅에 떨어져 땅 속으로 깊숙히 들어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7년 이상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다가 어느 날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수만년 동안 학습된 본능으로 천적들의 활동이 뜸한 저녁에만 밖으로 나온다. 7년 만에 처음 빛을 보는 순간, 그마저도 대부분은 천적을 피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만이 나무위로 올라가 날개를 틔우고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2주동안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해 울고 울고 또 운다. 암컷은 울 수도 없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있을 자리에 산란관을 가지고 있는 암컷은, 7년을 기다려서 한 번 울지도 못하고 그저 알을 낳고 죽는다. 심지어 매미들은 7년, 13년, 17년... 소수(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양의 정수)해에만 흙밖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수명이 합성수인 천적들을 피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존재를 계속 존재하게 하기 위해, 종족 전체는 수만년의 세월을, 개체들은 수년의 세월을 어둠 속에서 투쟁한다.


이런. 나보다 낫잖아. 어쩐지 고귀하고 아름답다. 사랑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니. 그들은 목적을 알고 존재한다. 인간처럼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종족이 계속 존재하게 하기 위해 태어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을 떠난다. 그들은 세상에 온 이유를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고 그래서 고민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다. 명확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받치기도 하는 보기 드문 위인들처럼, 그들은 신념을 수행하기 위해 7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신념의 실현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 기다림도 죽음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사랑이라는 신념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다. 후회없는 삶이다. 내가 그들을 처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 유리창에 부딪히고 떨어져 점점 힘을 잃어가던 그 매미도, 아마 담담한 마음이었겠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나는 내 꿈을 이뤘으니까. 내 신념을 이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카페에 앉아있는 인간들을 제 생의 마지막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담담하게.


국문과를 졸업했으면서도 몰랐는데, 매미에 대한 시가 참 많았다. 복효근 시인의 시 <매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7년 땅속 벌레의 전생을 견디어
단 한 번 사랑을 죽음으로 치러야 하는
저 혼인비행이
처절해서 황홀하다

울고 갔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기라도 하다면
그 슬픈 유전자를
다시 땅속으로 묻어야 하리
그 끝 또한 수직이어서 깨끗하다


음, 나는 이 노래가 떠오른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매미가 사랑하는 건 한 마리의 암컷도 한 마리의 수컷도 아니다. 종족 전체에 대한 사랑, 그게 그들의 신념이다. 심수봉의 노래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러 세상에 왔다 가는 매미들. 딱히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고, 뜨겁게 사랑할 남친도 없는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멋있다 너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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