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도 히말라야 같다는 걸 또 잊고 살겠지만
머리 위로는 원숭이들이 나무를 타고 날아 다녔다. 친구에게 괜한 경쟁심이 들어 저만치 앞서 걷다가 나 홀로 물소와 마주쳤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물소는 다른 길로 돌아갔다. 이곳은 정글이구나 생각하고 긴장하며 걷고 또 걷는다. 그러면 갑자기 마을이 나타난다. 나는 산소가 점점 모자라 가는데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히말라야 하이킹을 하다보면, 수많은 포인트를 지나쳐간다. 포인트에는 마을이 있기도 하고 고요한 산 길이 있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출렁다리도 있다. 해가 지면, 보이는 민박 아무데나 들어가 잠을 잤다. 해가 뜨면 군 말 없이 다시 걷는다. 첫 민박에서는 용케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으나, 둘 째날 밤부터는 찬 물로 샤워 했다. 그리고 셋 째날 밤부터는 샤워할 곳이 없었다.
많은 포인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춤무룽'이다. 춤무룽에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이 있다. 내 인생에서 경험한 계단의 최고봉은 절마다 있는 108계단 뿐이었다. 북한산 밑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또래들보다는 산과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계단만큼은 정말 싫어한다. 가파른 언덕이라면 나무를 잡거나 돌을 잡고 자연스럽게 올라가면 된다. 사람들이 자주 잡아서 매끄러워진 나무는 가파른 길을 통과하는 최적의 네비게이션이지.
계단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평평하게 잘 깎인 돌을 오를 때 나는 자연과 저만치 멀어져 버린다. 무릎도 아프다. 골반이 뒤틀려서 무릎을 쓸 때마다 오른쪽 다리에서 딱 딱 소리가 난다. 내 맘대로 보폭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다리는 더 긴장을 하게 되는데, 내려갈 때는 그 고통이 더하다.
'춤무룽'에 계단이 많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올라가는 계단만 상상했다. 산을 '올라가는' 중이니 말이다. 그런데 반나절 계단을 오르면, 반나절은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어릴 때 많이 하는 장난이 기억났다. 가만히 멍 때리고 서있는 친구의 다리를 뒤에서 툭 차면, 친구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져앉았지. 그렇게 친구를 괴롭힌 업보가 쌓였는지 나도 계속 주저앉고 말았다. 그 와중에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등산복도 방수복도 아닌 나의 평범한 점퍼는 금방 젖어버렸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젖은 점퍼는 갓 붙인 파스처럼 차가워졌다. 살에 쩍쩍 달라붙는 차가움이란. 네팔의 비를 배불리 먹은 점퍼는 점점 무거워졌고, 결국 점퍼를 벗어버렸다.
애써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계속 오르락 내리락하다보니, 이 길에 진척이 있는지 의문까지 들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다 보면 높이는 (+)(-), 결국 0이니까. 나는 이 날 첫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다. 눈 앞에 먼저 가던 친구와 포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니, 그 장면보다는 내 기분이 또렷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궁지에 몰린 느낌. 1교시 언어 영역을 죽 쒔다는 걸 알면서도, 2교시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던 첫 수능의 느낌이었다. 산에 들어온지 이미 3일이 지났다. 혼자 길을 돌아갈 용기는 없고. 끝까지 가야 했다.
우리는 이마가 툭 튀어나온 바위 아래로 들어가 숨을 돌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포터에게 물었다. "Why up and down, up and down, up and down?" 손으로는 내려갔다 올라간다는 모양을 그렸다. 웨이브를 타는 파도같은.
"We go down. But we go up." 포터가 아무 생각이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쉽고 둔탁하고 성의없는 문장이었다. 근데 그 문장에 바빴던 내 호흡이 차분해졌다. 내려가고 있지만, 올라가는 중이다.
그 말을 듣고 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지. 그 말이 그 순간의 나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나까지 모두 꽉 끌어 안았달까. 오글거리니까 저리가라고 밀쳐내도 자꾸 가까이 오는, 무턱대고 다정한 사람처럼.
문득 심장박동측정기 속 초록색 선이 떠올랐다. 막장 드라마 속 병원에서 죽는 인물들 옆에는 항상 있는 그 기계. 초록색 선이 오르락 내리락 산을 그리다가 주인공이 죽으면 '삐' 소리와 함께 일직선이 되어버린다.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구나. 무조건 오르기만해도 무조건 내리기만 해도 되는 생명은 없다. 생명은 모두 오르락 내리락을 한다. 그 길이 평지만 계속되어도 그건 더이상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평한 삶이라고 좋아하기 보다는 권태에 빠지는 것일까. '살아있다' 라는 글자가 히말라야 도처에 널렸있다. 내려가고 있지만 올라가는 중이라니. 내리막 길도 결국 삶이 계속되는 하나의 과정이고, 내리막과 오르막은 크게보면 점점 높은 고도로 가는 길의 일부이다. 나는 그 날, 수많은 계단을 내려왔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내 삶도 그럴거다. 수명은 길어져서 하염없이 살아가야 할텐데, 얼마나 많은 내리막길이 있을 것인가. 언젠간 무릎이 터질 날이 오겠지. 그래도 침착하게, "나는 내려가고 있지만 올라가는 중이다"라고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좋은 말과 좋은 문장들은 잊혀지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또 다 잊어버리고 절망에 빠지겠지.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써놓는다.
해가 질 때 즈음, 민박에 도착해 찍은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산들이 물결쳐럼 포개져 있던 장면. 나는 저 산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구나. 민박집 침대에 누워 초록색 심장박동선을 노트에 그렸다. 그리고 "Life is up and down"라고 썼다. 나는 기가 막힌 발견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구글링을 해보니, 외국에서는 이미 관용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있더라. 그 와중에도 그러고 있던 나를 생각하면, 카피라이터 된 거는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