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히말라야 절벽을 만났을 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못했다. 반나절 거리를 앞둔 곳에서, 우린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나, 나 때문이었다.
어떤 준비도 없이 하이킹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상이변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고 그 비는 금세 눈으로 바뀌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눈은 얼음이 되었다. 그나마 올라오던 길에 누가 떨어뜨린 아이젠을 딱 하나 주었는데, 그렇게 버리고 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푹 젖은 점퍼는 짐이 되었고 눈은 머리털과 속옷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온몸이 젖은 채로 히말라야를 오르게 되다니. 중간에 마주친 한국인 단체 하이킹 단체가 있었다. 모두 아이젠과 등산용 지팡이, 두꺼운 방수점퍼를 단단히 갖춘 상태였다. 여러명의 포터가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었다. 그래 저렇게 왔어야 했는데.
고산병인지 감기인지 모르겠지만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어지럽기도 하고 온 몸에는 점점 힘이 없어졌다. 며칠 째 밤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민박에서 저녁밥을 먹다가, 미국에서 왔다는 의사를 만났다. 몸에 열이나고 설사도 한다고 말했더니, 고산병과 식중독이 같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에 타면 물이 정화된다는 가루를 주었는데, 사용해보진 않았다. 그 약을 손에 쥔 순간, 해리포터가 되어 아주 희귀한 치유제를 쟁취한 기분이 들어 잠깐 열이 내려갔던 것 같다.
그 날부터 설사와 구토가 시작됐다. 밤이되면 모두가 자는 사이, 나는 푸세식 화장실(화장실이라기엔 지하로 구멍이 뚫려있는 공간)에서 밤을 샜다. 10분 누워있으면 바로 구토가 올라와서 화장실로 뛰어가야했다. 아직도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는 그 길이 선명하다. 화장실 바로 앞에 달려있는 등불 하나에 의존해서, 오직 그 빛을 보고 달려가서 토를 했다. 그리고 설사도. 모든 걸 개워냈다고 착각하고 침대로 돌아오면, 낮 동안 다 젖어버린 점퍼를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그래도 너무 추웠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안쓰럽기 짝에 없는 나의 여행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또 하나의 불행이 닥치게 된다. 바로 생리다. 내 몸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졌기 때문인지, 예상치 못한 눈보라처럼 생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젠장. 생리대 정도는 준비해 갔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 난 준비되지 않았다. 아니, 두 달 동안 한국어 선생님을 할 때 썼던 생리대 중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걸로 하루를 버텼다.
여성들은 알겠지만 생리대 하나로 생리를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게다가 나의 대장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최악의 단계로 치달았다. 나의 근육은 더이상 힘이 없어졌고 눈밭을 등산하는 종종 나의 대장은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의 내용물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최악의 위생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위로는 구토를 하며 올라갔고 아래로는 두 가지 내용물을 동시에 내보내야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앞에 엄청난 절경이 펼쳐졌다. 날씨 좋은 때를 골라 하이킹하는 준비된자들은 아마 보지 못할, 준비되지 않은 불행한 자들을 위한 절경이었다. 눈이 쌓인 절벽. 아름답고 고요했다. 바람 소리는 신의 속삭임같았다. 동료들이 먼저 가고, 나는 서서 내 숨소리와 바람소리만 듣고 멍하니 절경을 바라보았다. 영원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이 곳의 일부구나.
하지만 불행히도 너무 괴로웠던 나는 (지금은 이렇게 담대히 쓰지만, 그 때는 정말 정말 정말 지옥같았다) 나쁜 생각도 들고 말았다. 여기서 그냥 뛰어내릴까.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등산 중인 동주와 포터도 나 때문에 10걸음마다 멈춰서서 나의 구토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물론 그 때 마다 나는 울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절벽을 봤을 때, '내가 사라지면 모두 행복할거야'라는 사춘기스러운 혹은 정말 비극적인 생각이 잠시 들고야 말았다. 산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더 깝깝했다. 모르면 덤빌텐데, 이미 온 길이기 때문에 너무 잘 알아서 두려웠다.
결국 그런 나를 본 하이커들과 민박집 주인, 포터들은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조언해줬다. 조언보다는 '주의'를 줬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네팔 친구들의 눈빛은 꽤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눈빛은 진짜였다. 진짜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고산병과 식중독이 겹치고 계속 고도에 머무르면, 계속 면역력이 떨어져서 제 힘으로 못내려가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그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였다.
안나베이스캠프 바로 전 민박집에서 눈을 뜬 아침이었다. 온 몸에 힘이 없었지만 그 하얗고 검었던 풍경은 잊지 못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눈안개가 꼈었다. 그리고 동주는 나에게 내려가자고 말해주었다. 포터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가 꼭 다시 오자고 하고 울면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은 긴데 뭐 그리 질척거렸나 싶지만서도 그 때의 나는 그랬다.
돌아오면서도 나는 계속 활발한 구토와 다양한 배출활동을 했다. 길 위에서 말이다. 당신이 장염에 걸려 하루 종일 화장실에 있던 날을 떠올려보면 날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포카리스웨트를 옆에 끼고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웠다가 화장실갔다가만 반복해야하는 그런 날. 나는 히말라야에 있었던 거다.
여기서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가면, 난 한국에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야. 그 어떤 시련도 살면서 극복해나갈 수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A.B.C에 도달하는 것에서 생존으로 나의 목표는 바뀐지 오래였으니까.
결국 나는 살아서 포카라로 돌아갔다. 길게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취업준비를 했고 일자리를 얻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 때 그 순간은 눈물나게 아름답기라도 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