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에 있었다

택시에서 만난 2002년 서울

by 오지윤

히말라야에서 만난 네팔 사람들을 보고 한국어 학생들이 생각났다. 이 높은 산에서 잘 차려 입고 어디를 가시나 싶은 젠틀맨 할아버지와, 등에 식자재 더미를 쌓아 올리고도 뛰어 올라가는 사람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상담했던 포터들. 이미 한국에 가봤으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민박집 주인 아저씨까지. 모두 학생들을 떠올리게 했다.



"너는 정이 늦게 드는구나."

몸이 아파서 죽겠다는 나를 동주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제지 기자로 일해서 꽤나 냉철해진 동주는 그때만해도 감성킬러였다. 나의 온갖 질병을 학생들과 정 떼느라 아픈 것으로 해석했던 친구였다.


암튼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우리는 '시누'에 도착했고 거기서 포카라로 가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아저씨들이 모두 아가씨, 아줌마 하며 나에게 달려 들었고 나는 가장 만만해보이는 택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난 매우 신경질적인 상태였는데, 그건 여행객으로서의 본능이었다. 장거리 택시기사와 가격 네고시에이션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최대한 싸가지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날카로우면서도 깡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택시 아저씨가 값을 말할 때마다 나는 아는 네팔어를 총동원해 값을 깎았다. 사실 '더 싸게!'라고만 여러번 외친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이겼다.



나는 신경질적인 승리감을 가지고 택시에 올랐다. 네팔의 여느 승합차처럼 빽미러에 가득 걸려있는 종교 장식들이 택시 기사아저씨를 수호해주고 있었다. 아저씨는 출발하기 전 여러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서 선곡을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택시가 출발했고 스피커에서는 주현미 노래가 흘러나왔다.


히말라야에서 죽다 살아나온 나는 주현미의 '신사동 그사람'을 듣고 무너져버렸다. 기사님께 신경질 냈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되니까 히말라야는 날 받아주지 않았겠구나. 극단적인 자기 반성의 시간이 흘러갔다.


벙쪄서 침묵하고 있는 우리를 두고, 택시아저씨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저씨는 2002년 한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이태원과 청량리를 지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구리에 있는 공장에서 조금 일했고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에서도 조금 일했다고 상세하게 자신의 한국 생활을 설명해주셨다.


택시 창문 밖으로는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고 어느새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흘러 나왔다. 꽤나 소름끼치게도 택시아저씨와 우리는 다 함께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아저씨는 아직도 한국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김건모 노래부터 클론, 김현정, GOD의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나와 동주는 아싸리 창문을 내리고 노래를 크게 따라 불렀다.


아저씨는 돈은 벌었지만 한국에서의 생계를 유지하는 게 한계가 있어서 네팔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나도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했노라고 말했는데 의외로 택시 아저씨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한국이 그립다고 했다. 한국에서 엄청 많은 카세트 테이프를 사왔고 택시에 창고처럼 보관해두며 매일 듣고 있는다고. 그리고 그런 아저씨에게 오늘 나는 가격을 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저씨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각자 헤매며 살다가 마침 잘도 마주쳤다. 우리는 그 때 같은 서울에 있었다. 우리는 학생이었고 아저씨는 한국어를 배워 노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2002년엔 월드컵이 열렸다. '한국인'의 피가 가장 들끓었던 축제. 택시 아저씨에겐 낯선 노동의 현장이었을 그 곳에서 나는 크게 소리지르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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