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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Jan 30. 2021

계단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의 기록

계단을 오르는 것만큼 역사 깊은 생활형 고난이 없다. 일정한 모양의 물체를 오르는 지루한 행위. 고난이 잦은 동네는 집값이 싸다. 그래서 계단은 정면으로 마주하는 쾌감이 있다. 모난 각들이 뭉개지고 줄무늬로 된 평면만 남는 장면. 3차원의 고난이 1차원의 패턴이 되어버린다. 그 미감이 좋아서 몇년 째 틈틈이 계단을 찍는다. 나에게만 멋져 보이는 게 있다는 건 행복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일이다.


처음 계단을 찍기 시작한 건 베를린의 어느 지하철 역 위다. 난간에 기대어 계단을 오가는 사람들을 한참 내려다 봤다. 카메라를 들었다. 프레임 안이 계단으로 가득찼다. 지하에서 등장해 지상으로 퇴장하는 사람들. 지상에서 흘러와 지하로 잠기는 사람들.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셔터를 눌렀다.

인생으로 비유되는 오브제들을 모은다면 계단만큼 짬이 오래된 쪽도 드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의 이동이 하나의 행위 예술처럼 느껴졌다. 익명의 사람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수직이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이라면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 계단은 참으로 원초적인 장애물이다. 이렇게나 고도화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은 물리적 장애물이다.

한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프레임 속 공간이 연극 무대가 된다. 무대의 왼쪽 커튼 뒤에서 등장해 무대의 중심에서 열연을 펼치고 오른쪽 커튼 뒤로 사라지는 등장인물들. 나는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 지 모른다. 다만 내려가거나 올라가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건 안다. 아주 심오한 부조리극을 공짜로 보는 기분이다. 시계 추의 진자 운동을 보는 것처럼 고요하고 한 편으로는 부질 없다.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이 명료하게 눈에 띌 때도 있다. 일본 시즈오카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사거리에 카메라를 세웠다. 계단보다 훨씬 다양한 소품과 방향이 있는 무대랄까. 햇살을 받아서 노르스름하게 빛나는 건물에는 길에서 바로 탈 수 있는 엘레베이터가 있었다. 한 남자가 와서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약 5분 동안 그는 층수가 바뀌는 숫자판만 바라보았다. 나 역시 숨 죽이고 그의 뒤통수만 노려보았다. 설마 정말 다른 곳은 보지 않을 셈인가. 그는 숫자가 1로 바뀌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가만히 서서 한 곳을 응시했다.

그런가 하면 고등학생 무리가 천진한 얼굴로 내 카메라를 보며 웃어주기도 한다. 한 손에 무거운 장을 본 여자는 내 카메라 바로 앞으로 힘있게 지나갔다. 정수리로부터 반경 5cm는 모두 대머리인데 가장자리에만 머리털이 난 남자가 땅만 쳐다보면서 다가오기도 했다. 핸드폰을 보는 것도 아니고 푹 숙인 고개를 보니 내 카메라가 왠지 미안해졌다.


나도 누군가의 시야에서는 프레임을 들락 날락하는 익명의 존재일 뿐이다. 무의미하게 셔터를 누르고 나면 수십명을 만나고 난 것처럼 든든해진다.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인가. 하찮지만 소중한 연대감이 든다.



Instagram @jeee_oh

Canon 6D / Contax 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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