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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Feb 14. 2021

최초의 입

배꼽에 대하여

어릴 때는 엄마와 목욕탕에 갈 때가 많았다. 온 몸을 구석 구석 씻고 있는 내게 엄마는 배꼽을 소중히 하라고 말했다. 그럼 난 샤워기를 배꼽에 대고 함참 서 있었지. 엄마는 배꼽의 끝이 장기와 닿아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생각하는 사이, 따뜻한 물이 그 작은 우물에서 넘치고 또 넘쳤다.


배꼽의 끝에 장기가 있다는 말이 맴돌았다. 집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배꼽 안으로 집어 넣었다. 도무지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오려고 애 쓸수록 깊이 빠지는 늪처럼 내가 너무 간절한 걸 알고 배꼽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일어나니 배꼽 근처가 가렵고 아렸다. 배꼽이 붉어져있더라. 소중히 하라는 말이 진짜였구나. 그 날부터 배꼽을 함부로 만지지 않았다.


임신 막 달이 된 친구의 배. 2021. 02. 05. Canon 6D


얼마 전 임신 막 달이 된 친구의 배를 찍었다. 배꼽이 팽팽해져 가장 안쪽에 있던 살이 밖으로 올라와 있었다. 배꼽 끝은 장기와 닿아 있지 않았다. 다만 하얗고 얇은 살로 막혀 있었다. 햐앟고 도톰한 살점. 이게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배꼽의 끝이구나. 하얀 살점이 마치 희고 둥근 달같다. 달의 뒷면만큼이나 이 배꼽의 뒷면이 보고 싶다. 이 배꼽 뒤로 연결된 탯줄을 통해 세포 하나에서 시작된 인간이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겠지.


우리 몸의 대칭점에 있는 부위들로 코, 입, 배꼽, 그리고 성기가 있다. 밖과 안을 통할 수 있는 문이 되는 것들이다. 생각해보니 배꼽도 당당히 이들 사이에 있었다. 배꼽은 우리의 최초의 입이다. 엄마가 먹은 음식을 받아 먹었던 입. 최초의 입은 그렇게 우리 몸 정 가운데 아주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구나.

2019. 05. Fuji X100T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주변 여성들의 배꼽을 사진으로 남겨 두는 중이다. 여성들의 배꼽이 인류 최초의 입이라는 생각에. 시커먼 떼가 끼는 이 쓸모 없는 흉터가 한 명의 인간이 시작될 때 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는 생각에.


내 배꼽이 또 다른 생명과 연결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근래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비키니나 크롭티를 입을 때 살랑살랑 보이는 나의 배꼽으로 엄마의 영양분을 받아 먹던 고귀한 날들을 상상해본다.


2020.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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