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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Oct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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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늙어가는 중입니다





무엇하나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단 두 가지 모두에게 공평하고 확실한 미래가 있다
우리 모두 늙을 거라는 것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





Seoul, 2018.



지하철 2호선. 옆자리 노인이 열심히 스도쿠를 풀고 있었다. 내가 옆에서 사진 찍는 줄도 모르고 꽤 잘 집중한 듯 했다. 유럽에 있을 땐 스도쿠를 푸는 노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조용히 스도쿠를 푸는 노인들. 신문에 있는 스도쿠부터 아예 스도쿠만 주구장창 풀 수 있는 문제집까지 그 모양도 다양했다. 스도쿠라는 아날로그 게임이 이렇게 수명이 긴 건 다 이유가 있다. 무료한 시간을 잘 흘려보낼 수 있고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다보면 더디게 늙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든다. 게다가 스도쿠를 푸는 데는 친구가 필요가 없다. 함께 2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출 손녀도 필요 없고 박수치며 노래를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도 필요 없다.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돈 주고 등록해줄 자식새끼는 더더욱이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스도쿠를 푸는 노인들은 외로워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하고 독립적이어 보인다. 무료한 시간을 혼자 감내해내는 노인들. 숫자 한 칸 한 칸을 채워나갈 때마다 늙고 병든 뇌세포들은 기쁜 함성을 지른다. 숫자를 열심히 채워나갈 수록 남은 삶의 시간도 부지런히 지워나가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한국에서 만난 이 할아버지가 무척 반가웠다. 양쪽에 앉은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착착 접은 신문지에서 노인의 품위까지 느껴졌다.



Tokyo, 2018.
Portland, 2018.
Tokyo, 2018.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60대에도 공부하라. 이런 책들을 보면 짜증이 나지만서도 공부하는 노인을 보면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도전 골든벨을 봤었다. 그 때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질문들에 답을 가장 먼저 해내며 가족들을 아주 발라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가족들을 무시했다. 저들도 언젠가 이런 지식들을 학교에서 배웠을텐데 왜 기억하지 못하는걸까. 여러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친구를 찾는 티비쇼도 내 자만심을 키워줬다. 친구 얼굴도 까먹는 연예인들이 이해가 안갔으므로 난 그들의 인성이 볼품없을 거라 확신했다. 머리 속에서 혈기왕성하게 활개치는 어리고 건강한 뇌세포들 덕분이었는데 나는 그게 내 능력인 줄 알았던 거다.


근데 그랬던 내가 고작 나이 서른에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불과 작년에 같이 일했던 분들의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기름을 말하려고 하다 입에서 거름이 나와버렸는데 이건 기억력의 문제도 아니라서 더 소름이 끼친다. 내가 몇년 후 치매나 언어장애라는 진단을 받게된다면 이렇게 노닥거리며 글이나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무척 증오하게 되겠지. 그럴 일은 없길 바란다.




Portland, 2018.
Portland, 2018.



무엇하나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단 두 가지 모두에게 공평하고 확실한 미래가 있다. 우리 모두 늙을 거라는 것과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 그 두 가지만은 모두의 확실하고 피할 수 없는 미래다. 10년 전 가고싶은 대학에 가지 못해 질질 짜고 있던 내게 유럽 배낭여행 중이던 언니는 엽서 한 장을 보내줬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특별한 문구가 적힌 엽서였다. 정확히 기억안나지만 인간의 기억력에 대한 허무함을 바탕으로 하는 글귀였다. 어차피 망각할텐데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뭐 이런 투였던 듯 하다. 내가 죽을 때까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영화나 음악에 대한 지식마저 균열이 간다는 것.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는 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넘겨 짚기도 힘든 답답한 느낌이다. 머리가 깨질듯한 느낌과 온 기억이 서로 엉켜 서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느낌. 나의 소중한 기억들을 끌어안고 뇌세포들은 매일 저 세상을 넘어간다.




Home, 2018.
Father, 2018.
Mom, 2018.



우리 할머니는 한글을 잘 쓸 줄 몰랐다. 근데 76세 쯤 되셨을 때 갑자기 한글을 배우고 싶다 하셨다. 엄마는 동네 서점에서 한글책과 공책을 사드렸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만큼 할머니의 표정도 날카로워졌다. 작은 소반을 침대 위로 올리고 할머니는 몸을 벽에 기대 앉았다. 그렇게 매일 한글 교실이 열렸다. 바둑이 칸 공책에 차례차례 글씨들이 채워져갔다. 그리고 1년 후 할머니는 잘 걷지 못하게 되었고 또 1년이 지나고는 치매가 할머니의 방을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또 1년 후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던 그 침대에서 눈을 감으셨다. 우리 할머니는 죽는 그 순간까지 늙어가는 중이셨다. 결코 늙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망각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배운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차마 완료형을 부여하기가 송구해진다. 젊은 시절에 우리는 모두 완료형을 꿈꾸며 살았다. 대학 합격, 취업, 결혼은 모두 완료형의 성과물이다. 그러다 생의 무게가 죽음에 기울수록 완료형은 금기의 대상이다. 늙어버렸다.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 버렸다. 모든 걸 이뤄버렸다. 더이상 이룰 게 없다. 모두 썩 달갑지 않다.


요즘 엄마는 부쩍 늙어버렸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릴 때 봤던 엄마의 손은 시부모님을 모시는 탓에 젊은 나이에도 주름이 가득했다. 말라 있는 시간보다 젖어있는 시간이 많았던 엄마 손은 참 늙고 미웠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늘의 엄마 손은 그 때보다 한참 더 늙어있다. 이보다 최악은 없을 거야라고 믿을 때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하는 얄미운 인생처럼, 우리의 노화는 그렇게 매일 매일 우리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 그럼에도 늙었다는 말보단 늙어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참히 흘러가는 시간에 투항하는 젊음이란 것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으니 우리는 아직 늙어가는 '중'이다. BTS 뮤직비디오 링크를 내게 먼저 보내주는 아버지와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설거지하는 엄마의 젖은 손은 아직 늙어가는 중이다.





Pentax.

Fuji X100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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