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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Oct 23. 2021

너에게는 없는 복

사랑이 떠나면서 고양이를 남겼다 

예전 남자친구와 함께 오복이(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나는 고양이와 친하지 않은 인간인데다가 고양이 알러지 점수가 10점 만점에 8점인 사람이었지만 냥덕후인 그 사람의 영향으로 고양이를 입양하게 됐다. 그런데 그가 오복이를 입양 하고 1주일 만에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음에도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전화로 꺼냈다. 참 효율적이고 무성의한 방법이었다. 고양이가 좋다며. 그렇게 고양이가 좋다더니. 


"오복아, 우린 버려졌어" 


효율적으로 버려진 나는, 그가 생각날 때마다 오복이를 껴안았다. 


나보다 체온이 높은 오복이를 껴안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우월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오복이가 있지만 그 사람에겐 아무도 없었다. 다시 말해, ‘오복이도 없는 주제에’, ‘오복이도 없으면서’로 시작하는 무수한 저주의 문장을 내뱉으며, 그 사람이 나보다 불행하다는 확신을 다졌다는 거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으라는데 나는 오복이의 통통한 허벅지를 매만지며 사람을 잊어갔다.



팀장이 내 자존감에 빨대를 꼽고 지 배만 불리던 날에도 나는 집에 오자마자 오복이를 껴안았다. 오복이는 다른 고양이와 달리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안겨 있었다. 팀장에게는 오복이가 없지만 나에게는 오복이가 있었다. 변기통에 앉아 골프 유튜브를 보고 있을 팀장을 생각하며 나는 우월감을 느꼈다. 내가 변기통에 앉아 고군분투하는 동안 오복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봐 주고 있었으니까. 나에게는 너희에게 없는 오복이가 있다.



아이들은 엄마가 곁에 있을 때만 운다는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다. 혼자 있을 때는 넘어져도 울지 않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뒤늦게라도 운다는 거다. 엄마는 많이 아프냐며 아이를 안아주겠지. 하지만 내가 오복이를 붙잡고 아무리 울어도 오복이는 나를 안아주는 법이 없다. 오복이에게 오늘 있던 일을 쏟아내며 불쌍한 척을 해도 오복이는 대답이 없다. 오복이라는 엄마는 무표정하고 매정한 엄마. 무표정한 오복이 앞에서 나는 머쓱해져버린다.  



그리고 그 머쓱함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 만다. ‘어쩌라고’라는 듯한 오복이의 눈빛에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빨래를 개기 시작한다. 인간아, 그게 뭐 별 일이니? 오복이는 가르침을 다 전한 스승처럼 창문 밖만 바라본다. 오복이에게는 모든 일이 크게 울 일도 크게 웃을 일도 아니다. 부처님이 모두에게 미소를 짓고 예수님이 모두를 가엾게 바라보듯이, 오복이는 모두 일에 무덤덤한 표정이다. 따뜻한 엉덩이를 내어줄 뿐 결코 흔들리지 않는 무덤덤함. 그것이 나를 기운나게 한다. 



내가 밤 늦게 집에 들어오면 오복이는 늘 말이 많아진다. 애오오- 애오오오오-  운 좋은 날엔 오복이와 다섯 번 이상 말을 주고 받기도 한다. 내 맘대로 ‘보고싶었어’ ‘왜 이제 왔어’로 해석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오복이가 심한 말을 하는 건지 좋은 말을 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외국인(혹은 외계인)이다. 독일의 지하철이 떠오른다. 시끄러운 지하철 칸에서도 나는 독일어를 모르니 참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언어를 몰라 답답해서 외국 살기 싫다는데, 나는 그 무지함에서 오는 자유가 좋았다. 그들이 욕을 하든 사랑을 나누든 이방인에게는 그저 풍경일 뿐이니까. 



오복이와 나는 서로 밥먹고 똥누고 잠자는 것을 지켜봐주는 사이지만, 언제까지나 이방인(이방냥)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니 죽을 때까지 온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더 애틋하다.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 들었다면 오복이는 나같이 찌질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좋아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복이도 어쩌면 심한말만 입에 달고사는 양아치 고양이일지도. 다행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행히 우리는 무덤덤히 안아주고 지켜주고 바라봐줄 뿐.






2021.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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