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틴더를 했다.
코로나 시대란 집에만 있는 시대다. 혼자 놀아야 하는 시대. 회사 상사가 물었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여자들은 쇼핑 덜하겠네? 왜 여기서 여자를 들먹이냐는 질문을 흘려 보내고 곰곰히 내 생활을 돌아봤다. 정 반대였다. 태어나서 재택근무를 처음 해 본 올 봄에는 입지도 않을 옷과 신발을 왕창 사들였다. 집에만 있는 낮밤이 반복되니 내가 살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쇼핑이었다. 얼떨결에 원목 장식장까지 샀다. 내 집은 10평이다. 집은 더 더러워졌다. 더 좁아졌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나는 코로나 시대를 그렇게 맞이했다.
코로나 전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적당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풍요로운 근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필라테스 스튜디오에는 회원권을 끊어 입장했다 . 내가 아무리 오만상을 쓰고 운동을 해도 선생님은 상냥한 서비스를 베풀었다.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고양이의 털을 빗어주고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내가 꽤나 윤기있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공간의 이동이 없어지고 모든걸 집에서 혼자하니 거품이 빠지고 본질만 앙상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저 일하고 밥먹고 똥싸고 스트레칭하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었다. 내 스스로에게 내 정체가 까발려진 기분.
나는 내가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간이라 믿었것만. 나는 외로운 승냥이. 사람이 그리웠다. 틴더를 깔았다. 분홍색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이콘. 틴더라고 영어사전에 찾아보니 불을 붙이는 부싯돌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반려견들의 교배를 위한 매칭앱으로 시작했다는 말이 있었다. 반려견의 교배를 위한 앱에서 주인들이 교배를 했구만. 예문도 나왔다. “tinder is Macdonald for date”. 나는 맥도날드를 좋아한다.
틴더에 입장하자 “코로나 때문에 답답해서 가입함” 이라는 식의 자기소개가 자주 보였다. ‘나는 원래 이런거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하는거임’이라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거는 외로운 얼굴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나도 마찬가지 였다. 모르는 이성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다음과 같이 시작됐다.
남: 어디세요?
나: 저는 집이에요.
남: 벌써 퇴근하셨나요?
나: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라서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남: 와, 부러워요. 저도 코로나 때문에 사는게 재미 없어서 가입했어요^^
재택근무라는 것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히는 것과 비슷했다. 회사에 출근할 때는 그렇게 집에 가고 싶었는데, 아무리 좋은 것도 비교군이 없으면 매력이 없다. 나는 1인용 소파에 쳐박혀서 틴더를 했다. 계속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만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팠다. 틴더는 피곤했다.
틴더를 오래 전에 해 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사진 너머를 보라’ 라는 명언을 남겼다. 2D로 된 얼굴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3D로 바꾸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매력있게 써놓으라는 말도 들었다. "33살. 강남 건물 임대업중."같은 말로 어필하는 사람들을 봤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50억 자산이 있으니 함께 불려가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나중에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한 번 만나보지 그랬냐고 등짝을 때리셨다. 정말?) 어떤 분은 "나랑 사귀면 올리브영 40% 세일"이라고 적어놨으며 어떤 분은 철학자의 명언을 원어로 적어놨다. 나는 결국 자기소개에 아무말도 적지 못했다.
다음은 사진이다. 실물을 봤을 때 너무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잘 나온 사진이 필요하다. 셀카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셀카를 즐겨 찍는 사람이 아니야.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매력적인 자신의 모습을 올린다. 그런 점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를 내는 얼굴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상반신을 보여주는 사진도 참 많았다. 보통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갑자기 옆팀 동료분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나왔다. 나는 너무 놀래서 앱을 삭제해버렸다. 물론 5분 뒤에 다시 깔았지만.
취업을 하듯이 자기소개를 쓰고 면접을 보듯이 채팅을 하고 최종면접으로 현피를 뜨고 나면 언젠가 애인이 생기는 거냐. 틴더를 통해 애인을 만났다는 친구들의 간증을 에너지로 삼아 나는 최선을 다해 틴더를 했다. 어떤 사람과는 밥을 먹었고 어떤 사람과는 산책만 했고 어떤 사람과는 술도 마셨다.
마스크를 쓴 첫인상. 웃고 있는 눈. 거기까지는 괜찮아.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서 마스크를 벗을 때는 마치 가면무도회의 뒤풀이에 온 것 같았지. 더 이상 마스크 뒤에 숨을 수가 없네. 가려졌던 나의 코와 입을 보고 너는 무슨 생각을 했어? 휴, 아직 아무도 애인이 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