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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Oct 28. 2020

FWB와 F&B 사이.

우리가 사랑은 아닐지라도.

소개팅앱에는 FWB라는 세글자가 자주 보인다. Friends With Benefit, 쉽게 말하면 잠자리를 갖는 친구 사이. 경선 언니는 차라리 발정났다고 쓰지 허세를 부린다고 뭐라 했다. 왠지 변호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사람이 요리를 하게 된 이유가 고기는 먹고 싶은데 피를 보기 싫어서 라고 한다. 인간은 동물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핏덩어리를 먹으면 죄책감과 역겨움이 들도록 설계 되었다. 그래서 고기를 칼로 썰고 불에 익힌다. 원래 어떤 생명체였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이 오직 맛에 집중하면 된다. 동물이 아니라, 요리를 먹는 게 되는 거다.


FWB도 ‘요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지어보려는 노력의 차원에서 우리는 굳이 ‘Friends’라는 관계를 붙인다. 욕망을 포장하지않으면 비린내가 나니까.


FWB를 추구하는 친구에게 그게 왜 좋냐고 물었다. 연애하기 좋은 상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연애를 하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 소모도 지칠대로 지쳤다. 하지만 섹스는 좋은 것. ‘친구’라는 정의가 상대와의 유대감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이런 합의가 이뤄지면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녀는 대충 이런식으로 말해줬다. 또 다른 친구는 ‘연애며 결혼이며 복잡한데 섹스나 신나게 하자’ 라고 말했다. 어른이 되고 꽤 오랜만에 ‘신나게’라는 부사를 들었다. 친구의 문장은 맑고 투명했다. 어린 아이가 실로폰의 아무 음정이나 두드려 댄 것처럼 청량한 소음이 주책없이 울려퍼졌다.


여덟번 째 만난 남자가 사귀자는 말을 안했다. 연애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게 듣기만 했던 FWB인가 싶어서 참다 참다 물어봤다. 근데 그 순간 말이 잘못 나왔다.


“우리 그럼 F&B야?”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F&B 업계 클라이언트를 오래 맡았다. 커피도 있었고 조리식품도 있었다. Food(음식)와 Berverage(음료)라는 뜻이다. F&B는 어떤 사이일까. 손도 안잡고 뽀뽀도 안하고 주구장창 차마시고 밥만 먹는 사이일까. 그래도 서로 더 아껴주는 사이일까. 그것도 못할 짓인데.


말실수였지만 내가 그런 ‘불편한’ 질문을 하고부터 그는 연락이 끊겼다. 질문이 내 입으로 나오는 순간 예상한 결과이긴 했다. 우리는 FWB도 아니고 F&B도 아니었던 거지. 식상하지만 나쁜놈이었던걸로 결론을 내렸다.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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