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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Oct 19. 2021

안녕, 파킨슨씨

불현듯 아빠에게 찾아온 파킨슨씨에 대하여 


열일곱 살에 마지막 가족 여행을 갔었다. 그 후 부모님 없이 많은 나라를 여행 했고 부모님은 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16년이 지났다. 나이 앞자리가 두 번 바뀌고서야, 나는 부모님과 다시 여행을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가족 여행을 떠나기 직전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았다. 3박 4일 짧은 강원도 여행에서 그는 하루 평균 1,2000보를 걸었으나, 아무리 걸어도 그의 팔 한 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걸을 때 마다 오른 쪽 팔만 앞뒤로 흔들릴 뿐 다른 한 쪽은 왠지 허리춤에 붙어 있었다. 파킨슨이라는 무서운 이름은 이렇게 바보같은 증상으로 찾아왔다.



그는 절대 이 사실을 친척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친척들이 자신의 상황을 알게되면, 걸을 때 팔이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만 유심히 볼 것이라고 했다. 관찰 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꼭 비밀을 지켜주길 바란다. 





16년 전 여행에서도 그는 지금처럼 말이 없었다. 말 없이 걷다가 풍경 좋은 곳에 서서, “야 사진 좀 찍어봐라”라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야’는 나 혹은 엄마였는데 우리에게‘야’라고 하는 그가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옆에 가서 가만히 서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둘이 가만히 서있는 사진이 지금 우리집 냉장고에 붙어있다. 



16년이 지난 이번 여행에서도 그는 말이 적었다. 이제 그는 사진 찍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강원도의 어느 계곡에서 그는 잘 안 움직이는 손을 찬 계곡물에 담갔다. 쪼그려 앉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일제히 사진을 찍었다. 귀여운 포즈를 짓다가도 카메라만 켜면 도망가는 고양이처럼 그도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내 핸드폰에는 그가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나와 언니는 양말을 벗고 계곡에 발을 담갔다. 엄마는 신나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는 형부와 멀리서 우리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군가 내게 ‘사랑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본다면, ‘부모가 미소를 지으며 내 사진을 찍어줄 때의 기분’이라고 이야기 하겠다. 나와 언니는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아버지도 카메라를 든 우리 앞에서 그 기분을 느꼈을까. 



우리는 호숫가에서 한 참을 머물렀다. 그는 벤치에 누워 눈을 감았다. 바람이 적당히 불었다. 아빠는 두 손에 핸드폰을 고이 쥐고 누웠는데 그 핸드폰에서는 '피가로의 결혼'의 어느 노래가 흘러 나왔다. 엄마, 언니, 형부와 나는 그 풍경을 오래도록 감상했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그 순간 우리 마음엔 비슷한 결의 사랑이 가득했다.




우리는 밤에 맥주를 마시며 파킨슨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잘 모르지만, 우리는 파킨슨씨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파킨슨씨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편히 쉬었다가라고 다과를 내어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새벽에 본 일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언니와 형부는 자고 있었고 그는 엄마와 단 둘이 일출을 봤다고 했다. 부쩍 말이 많아진 그는 행복해보였다. 우리가 그에게 잔소리를 하자, 그는 아프고 늙은 사람에게 그러지말라고 농담까지 해보였다. 갑자기 아이 같이 웃기도 했는데 나는 속으로 왠지 울음이 날 것 같았다. 웃음과 울음이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에 다녀와서 1주일 동안 그는 가족 채팅방에서 꽤 많은 말을 했고 1주일이 지나자 그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내가 천하의 불효녀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다음 여행이 얼마 후일지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그 행복한 표정이 또 얼마 후일지 그려지지 않는다. 



무뚝뚝한 그를 닮아 무뚝뚝한 나는 그에게 더 잘하기보다 더 그리워하는 것을 먼저 시작했다. 그에게 전화 한통 하는 것은 부끄러워서 벌써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그리워하기만 한다. 그리워하는 것은 쉽다. 참 쉬운 일이다. 그가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보낸 '오늘'이 나의 작은 오피스텔 원룸에 노크를 한다. 그럼 나는 문을 열어 그의 '오늘'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다 괜찮아질거라고 위로한다. 이제 파킨슨씨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천천히 와달라고 말할 생각이다.



        2021.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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