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 녹색 앞에 서자.
나는 남자 아이를 원하던 집안에 태어났다. 일일 드라마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며느리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시절 엄청난 히트작이었다) 그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께서 남자 아이에 대한 미련을 주렁 주렁 내 놓으셨던 기억이 난다. 어쩌지 못하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엄마의 파마머리 뒷모습도 선명하다.
어릴 때부터 분홍색과 파랑색이 둘 다 싫었다. 여자 아이 다운 걸 고르는 것 같아서 분홍이 싫었고, 그 반감으로 파랑을 선택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언제나 초록색을 골랐다. 세일러문 중에서도 주피터를 좋아했다.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귀걸이를 하고 '목성'을 상징하는 주피터는 늘 쿨하고 멋있는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란, 엄밀히 따지면 초록색'이 아니라 '녹색’에 가깝다. 연약하고 상냥할 것 같은 ‘초록’말고 거대하고 울창한 ‘녹색’이 좋았다.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수식어로는 감히 넘 볼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에 소속되고 싶었다.
우리 집은 북한산 국립공원 앞에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산책을 한다는 건 곧 산에 가는 걸 의미했다. 어느 날은 ‘매표소까지’ 산책했고 어떤 날은 ‘첫째 다리’까지 산책했다. 어느 계절, 어느 날씨에도 녹색은 늘 그곳에 있었다. 습지에는 이끼가 있었고 겨울에는 상록수가 있었고 여름에는 모두 있었다.
우리집 거실에서는 감나무가 보였고 내 방 앞에는 라일락이 보였으며, 할머니의 텃밭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친구들이 ‘꽃 향기’가 난다고 할 때, ‘이건 라일락 향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좋았다. 그게 나의 자랑이었다. 서울인데도 집 값이 십 년 째 그대로인 우리집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아빠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집에오는 길에 족제비가 죽어있던 날이 있었고 꿩 가족이 집 앞에 놀러온 날이 있었다. 녹색이 낳은 우리 동네가 좋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차 밖으로 북한산이 눈에 들어오자 엄마는 '집이다'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녹색'은 우리 모두의 집이었다.
꽃은 지지만 '녹색'은 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동물원의 사자보다 식물원의 거대한 선인장들이 더 무서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에 있었을 선인장들은 무서울만큼 고요했다. 천장에 닿을 것 같은 높이의 선인장의 그림자가 입구에 들어서는 내 발에 닿았다. 아무런 자랑도 칭얼거림도 없이 고요한 그것들이 어린 나를 기죽였다.
녹색은 경이롭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존재다. 그게 날 편안하게 한다. 영원한 존재감이 나를 장악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노트북과 시간과 과제와 사랑과 지식을 모두 내려놓는다. 무서운 바람이 불면 녹은 더 짙어지는데 나만 사라져간다.
녹색은 영원함이 마땅하고 우리는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마땅한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는 녹색 앞에 설 것. 모든게 수긍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