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오지윤 Oct 24. 2021

좋아하는 색을 고르시오.

마땅한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 녹색 앞에 서자.


나는 남자 아이를 원하던 집안에 태어났다. 일일 드라마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며느리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시절 엄청난 히트작이었다) 그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께서 남자 아이에 대한 미련을 주렁 주렁 내 놓으셨던 기억이 난다. 어쩌지 못하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엄마의 파마머리 뒷모습도 선명하다.



어릴 때부터 분홍색과 파랑색이 둘 다 싫었다. 여자 아이 다운 걸 고르는 것 같아서 분홍이 싫었고, 그 반감으로 파랑을 선택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언제나 초록색을 골랐다. 세일러문 중에서도 주피터를 좋아했다.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귀걸이를 하고 '목성'을 상징하는 주피터는 늘 쿨하고 멋있는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란, 엄밀히 따지면 초록색' 아니라 '녹색에 가깝다. 연약하고 상냥할  같은 ‘초록말고 거대하고 울창한 ‘녹색 좋았다.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수식어로는 감히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에 소속되고 싶었다.



우리 집은 북한산 국립공원 앞에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산책을 한다는 건 곧 산에 가는 걸 의미했다. 어느 날은 ‘매표소까지’ 산책했고 어떤 날은 ‘첫째 다리’까지 산책했다. 어느 계절, 어느 날씨에도 녹색은 늘 그곳에 있었다. 습지에는 이끼가 있었고 겨울에는 상록수가 있었고 여름에는 모두 있었다.



우리집 거실에서는 감나무가 보였고 내 방 앞에는 라일락이 보였으며, 할머니의 텃밭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친구들이 ‘꽃 향기’가 난다고 할 때, ‘이건 라일락 향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좋았다. 그게 나의 자랑이었다.  서울인데도 집 값이 십 년 째 그대로인 우리집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아빠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집에오는 길에 족제비가 죽어있던 날이 있었고 꿩 가족이 집 앞에 놀러온 날이 있었다. 녹색이 낳은 우리 동네가 좋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차 밖으로 북한산이 눈에 들어오자 엄마는 '집이다'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녹색'은 우리 모두의 집이었다.



꽃은 지지만 '녹색'은 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동물원의 사자보다 식물원의 거대한 선인장들이 더 무서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에 있었을 선인장들은 무서울만큼 고요했다. 천장에 닿을 것 같은 높이의 선인장의 그림자가 입구에 들어서는 내 발에 닿았다. 아무런 자랑도 칭얼거림도 없이 고요한 그것들이 어린 나를 기죽였다.



녹색은 경이롭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존재다. 그게 날 편안하게 한다. 영원한 존재감이 나를 장악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노트북과 시간과 과제와 사랑과 지식을 모두 내려놓는다. 무서운 바람이 불면 녹은 더 짙어지는데 나만 사라져간다.



녹색은 영원함이 마땅하고 우리는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마땅한 것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는 녹색 앞에 설 것. 모든게 수긍이 된다.





이전 07화 득주와 함께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고 기특한 불행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