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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May 26. 2021

기특한 불행

우리를 연대하게 하는 것 

'안전장치’라는 말을 들으면 롯데월드의 자이로드롭이 떠오른다. 몇 백 미터를 자유 낙하하다가 갑자기 덜컹하고 착지하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 누군가 귀에 대고 “살려는 드릴게”라고 속삭이고 사라졌던 것이 분명하다.


몇 년 전 나의 모든 안전장치(친구, 가족, 반려동물 등)가 약빨이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겪었다. 나는 회사 가는 택시에 실려 남산 1호터널 불빛을 보고 있었다. 그 불빛들이란 이동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가는 동안 바라봤던 병원 천장의 조명들과 비슷하게 생겨 먹었다. 문득 “나는 존엄하지 않다”라는 명제가 정성어린 궁서체로 머리 속에 입력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계시같았다. 한 달 째 주말 출근을 하러 가는 택시 안이었다.  


그 순간 부터 1호터널은 안전장치가 없는 자이로드롭으로 변해버렸고 매일 아침 나는 회사에 내리 꽂아졌다. 스스로도 이 감정을 괜한 어리광이라고 의심하기도 하며 몇 달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 당시 본가에서 함께 살던 반려견 샬로미가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 이것은 위험했다. 심리 상담을 공부하는 언니에게 샬로미에 대한 감정을 설명했더니 “그건 진짜네.”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레알이었다.


그렇게 나는 2년 넘게 상담을 받게되었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도움의 문장을 얻었다. 어떤 때는 메모도 하고 녹음도 하며 그 문장들을 체득하려 애썼지만 막상 필요할 때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이 글을 읽는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은 이제 나를 못되 쳐먹은 인간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다. 변명은 추후에 하겠다. 선생님이 내게 전수해준 문장 중 나의 안전장치로 자리매김한 단 하나의 문장은 ‘세상 사람들은 다들 불행해요’라는 문장이었다. 이 때 부터 나는 이 문장을 하루에 한 번쯤은 되뇌이게 되었는데 스스로가‘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전설적인 요괴’ 따위로 느껴질 때도 있다.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헌법 제 10조에도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기 되어있다. 하지만 이 문장도 숨기지 못한 진실이 있었으니, 행복이란 것이 아주 어렵고 잘 부스러진다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국가가 이를 보장까지 해야한단 말인가.


헌법 제10조 문장 바로 밑에는 누군가가 몰래 써놓은 촛농 글씨가 있음에 틀림없다. 레몬즙을 떨어뜨리면 볼 수 있는 비밀 글씨말이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존* 고통스러움"이라고 쓰여있을 게 분명하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승처럼 오래된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서 혼자 헌법 제 10조 밑에 레몬즙을 뿌리는 나를 상상해보려는데 손에 뭍은 레몬즙을 바지에 슥슥 닦는 나의 뻘쭘한 표정부터 떠오른다. 모양 빠진다.




며칠전에도 나는 퇴근하며 억울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날의 불행은 회사에 있는 25년차 임원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래서 나는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 3년동안 전화를 한 적 없는 지현이었다. 왠지 전화를 걸고 싶었다. 광고회사 출신에 나랑 비슷하게 보수적인 대기업으로 이직한 지현은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점까지 똑같다. 아, 하나 빠뜨렸는데 같은 국문과 친구다. 그러므로 나와 프로필의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게 오랜만이었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얼마전 지현은 내게 헤어지고 싶은 남친과 헤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카톡으로 상담했었다. 나는 전화를 받은 그녀의 불행을 다짜고짜 흔들어 깨웠다.


- 잘 만나고 있냐

- 아니, 진짜 괴로워.

- 회사는 어때

- 이직하고 싶지. 면접도 봤었어.

- 뭐???


여기서 나의 ‘뭐???’가 굉장히 기쁨에 차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죄책감이 들진 않는다. 지현에게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불행을 먹으러 왔다. 으흐흐.’ 지현은 기쁜 마음으로 내 입에 불행을 물려주었다. 쭈구려 앉아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본인도 자세를 낮추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지윤아. 나도 거지같아.


서로 거지같다며 아웅다웅하는데 왜 우리는 점점 웃음이 나는 거냐. 나만 힘든 건 아니고, 너도 힘들다는 사실은 왜이리 약효가 쩌는 것인가. 스스로 부끄러워 지게 말이다. 하지만 나도 내 불행을 지현에게 한 껏 떠 먹여 주었으니,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나눠 먹으며 위로받고 서로를 더 껴안아주게 되니 나쁘지만은 않다고 자위해본다.




이 천박한 안전장치는 의외로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나 빼고 다 잘되고 나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말이다.“아냐, 저들도 고통받고 있어. 저들도 존* 불행하지.” 나의 생각 회로가 이 안전장치를 만나는 순간, 덜컥 하고 옷장에 가둬두었던 ‘인류애’가 문을 따고 기어나온다. ‘인류애’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셈이다. 나는 모든 시기와 불안의 마음을 내려 놓게 되며, 모두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성인의 경지로 가는 지름길로 발을 들여 놓는 중이다.


그러고보면, '연대감'이란 것도 불행을 나누는데서 온다.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알콜 중독 치료 모임’에서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이야기하고 함께 울며 주말을 보낸다. 불행을 나누는 일이 곧 행복감을 주는 모순을 눈치채기도 전에 우리는 회복되어 또 월요일을 맞는다.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행진하거나, 같은 빡침을 공유하는 팀원끼리 모여서 팀장을 욕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연대감’은  서로의 불행을 확인하는 데서 오고, 그 불행 대잔치가 행복의 시작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고해성사 한 것처럼 좀 후련하다. 그보다 더 큰 마음은 내가 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다. 불행에 대한 글을 쓰며 자존감이 높아져버렸다. 창피하지 않다.


20.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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