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집안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시지프스들에게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의자가 따뜻해져 왔다. 화장실 거울을 등지고 뒤를 보니 청바지에 새어 나온 피가 보였다. 남은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집으로 갔다. 세면대 하수구를 막고 차가운 물을 받았다. 피가 묻은 부분을 차가운 물에 푹 담구자, 그세를 못참고 핏물이 빠져나왔다. 1시간 정도 기다리자 얼룩이 거의 사라졌다.
청바지를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서있는 나를 보았다. 평온해보였다. 너, 정말 어른같다. 호들갑 떨며 칭찬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녀의 조용한 시간을 지켜주고 싶어서 내버려두었다.
김훈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을 공감할 줄 아는 ‘밥 벌어 먹는 인간’이 되고서도 아,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하고 느낀 적 없다. 내 몸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생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돈을 번다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일이다. 내 ‘생명’을 책임질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는 거니까.
그러나 자취를 하고 ‘집안일’을 온전히 내가 하게 되면서, 김훈이 뭔가 놓쳤다는 의심을 하게 됐다. ‘밥벌이’가 아름답다면 ‘집안일’은 성스러웠다. 밥벌이로 책임지는 게 내 ‘생명’이라면 집안일로 완성 되는 건 내 ‘삶’이었다.
'집안일’은 ‘밥벌이’보다 몇 배로 지겹다. 세규(아버지)는 25년동안 같은 회사를 다녔다. 그 안에서 몇 번의 승진을 했고 하는 일이 고도화되었다. 정희(어머니)는 35년 째 같은 살림을 한다. 단 한 번의 승진도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장비들이 들어와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만, 오른쪽 좌골뼈는 이미 녹슬 때로 녹슬어서 세라믹 인공뼈로 바꿔 껴야 했다.
한 번은 세규에게 ‘죽기 전에 설거지를 한 번 해봅시다’ 제안(어르고 달래서)하여, 그가 설거지 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손에 낀 붉은 고무장갑이 그보다 더 어색해하고 있었다. 세규에게 왜 부엌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배웠는데, 사람이 바뀌는 게 쉽지 않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고된 ‘밥벌이’가 끝난 후 향기로운 샤워 타임이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머리카락이 뭉쳐서 하수구를 막았다. 심지어 구정물이 역류해서 내 발가락을 적셔버렸다. 더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다. 샤워라는 깨끗한 ‘시간’이 단 번 에 끔찍한 ‘현장’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나는 문을 빼꼼 열고 ‘엄마!’를 외쳤다. 지금의 나는 하수구 뚜껑에 두 손가락을 가열차게 꼽고 오물 덩어리를 직면한다. ‘집안일’은 이렇게나 주체적이고 의지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집안일이 단순히 ‘더러움’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다. 집 안에 있는 머리카락과 떼구정물은 ‘내 몸에서 이탈한 것들’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먼지들도, 쓰레기도 모두 내가 만든 것들이다. 내가 만든 쓰레기와 내 몸에서 이탈한 흔적들. 모두 온전히 나의 육체가 만든 것들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내가 만든 오물들을 내 손으로 치우는 행위. 그게 ‘집안일’이다. 내가 저지른 것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는 가장 "어른스러운" 일이다.
나와 세규가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고 있을 때에, 화장실에서 머리카락 덩이를 끌어올리고 있었을 정희를 생각한다. 정희라는 어른에게 의지했던 나와 세규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올해도 새해 소원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 일한 만큼만 버는 사람은 능력없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집이라는 성역에서는 치운만큼 깨끗해진다. 땀흘린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는 부엌과 청소한만큼 줄어드는 재채기에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배운다.
청바지에 피가 묻으면 내 할 일은 짜증을 내는 것 뿐일 때가 있었다. 정희가 찬 물에 청바지를 담궈뒀다가 깨끗히 세탁을 해서 가져다 줄 때, 내 일은 “두고 나가”라고 말하는 것 뿐일 못되 쳐 먹은 시절도 있었다. 세면대에 가득찬 핏물을 보고있노라니 아,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행복.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밥벌이만이 아니다. 더 지겨운일은 그 다음 일이다. 만년 아기같은 우리 세규도 이제 청소기를 돌리고 행주질도 할 줄 안다. 그게 ‘나’라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걸 세규가 깨닫길 바란다. 봄이 온다. 간만에 꼰대질(“다 아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을 하러 세규를 찾아뵐 것이다.
Special thanks to.
나의 아버지 세규, 김훈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