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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Oct 15. 2020

음악감상 시 형광펜은 필수

Miles Davis - Boplicity

https://youtu.be/HLzqjmoZZAc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비밥이 한참 성행하던 때 찰리 파커의 밴드에 소속되어 본격적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기존 비밥을 연주하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비밥이 가진 충동적이고 파워풀한 연주를 수행하기에 그가 가진 음색이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트럼펫을 전공했을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넓게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그는 결국 자신의 마음에 더욱 확신이 드는 음악을 실현시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길 에반스를 비롯한 9인조 밴드가 모였고, 그들이 탄생시킨 앨범이 바로 쿨 재즈의 시작을 알린 [Birth of the Cool]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탄생시킨 '쿨 재즈'라는 것에 대한 모호함이 있었는데 오늘 아주 명쾌한 답을 들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모두가 끊임없이 달아오르기를 멈추지 않던 비밥의 시대에, 마일즈는 '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음악을 했고, "부는 것보다 안 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명언까지 남겼다.


Miles Davis - Blue In Green

https://youtu.be/TLDflhhdPCg


 마일즈 데이비스의 쿨 재즈는 [Kind of Blue]를 통해 극치를 이루었다. 아주 정제되고, 절제된 사운드를 통해 그가 추구했던 음악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이 앨범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재즈 팬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밴드에 인종에 대한 경계를 두지 않았다. [Kind of Blue] 제작 시 영입했던 백인 뮤지션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현대 재즈 피아니스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빌 에반스'였다.   


Bill Evans - Waltz For Debby

https://www.youtube.com/watch?v=dH3GSrCmzC8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을 듣고 있으면 확실히 비밥과는 다른 '순한 맛'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자체가 맹숭맹숭하다거나, 별 볼 게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일즈가 트럼펫을 통해 불어낸 음들은 그가 느끼는 느낌들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괜히 열 내지 않아도 되고, 과장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아마 평소에도 자신이 가진 명료한 사고방식의 장점을 활용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저함'이라는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찰리 파커의 밴드에 소속되어 자연스레 마주칠 기회들을 활용하려 하지 않고 과감히 떠난다. 참 특이한 것이 백인들의 춤 반주로 전락해버렸던 스윙으로부터 자신의 음악을 펼치기 위해 비밥을 꺼내 들었던 이들처럼 마일즈 또한 기존에 있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이었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마일즈 주위에 있던 누군가는 [Birth of the Cool]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그에게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음악을 왜 만드냐?"라는 말을 건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일즈는 자신의 음악에 마음을 쏟을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듯싶다. 그는 정확했다. 그의 시도는 매번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테니 말이다.


 마일즈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잘 정돈된 글을 읽는 것처럼 쏙쏙 잘 받아들여진다. 재즈는 '언어'와 같은 것이라던데. 멜로디가 흐르는 형태나 윤곽, 진행방향에서 균형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악보를 출력하여 프레이즈마다 멜로디를 형광펜으로 잇는다면 어떤 진행방향, 형태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텐션을 통한 각성과 자연스러운 해결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명료한 음악들은 곡이 진행됨에 따라 감상자의 머릿속에 도식을 그리게 하여 친숙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또한 완벽, 완고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내내 경험하게 되는 긴장과 해결, 오름과 내림의 과정이 안정과 만족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사실 메타인지적 능력에 대한 경험이다. 사라져 버리는 소리를 추적하고, 한꺼번에 다가오는 수많은 정보를 즉각적으로 판단, 분리, 지각하고 필요한 의미를 취하는 것 말이다. '멜로디'와 '그 외'의 부분을 살짝 분리하여 악보에서 멜로디를 형광펜으로 색칠하듯이 감상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장르 특유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방식이 된다. 아주 집중하며 따라가며 시시각각 경험하는 본인의 카타르시스에 큰 별을 그려도 좋다. 당장 멜로디는 사라질지라도 당신 머릿속에 새겨졌을 형광색의 커다란 별은 아마 사라지지 않고 기억될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가득 느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마일즈 데이비스와 쿨 재즈, 또는 당신이 도전하고자 했던 어떤 음악을 일단 재생시킨 후 멜로디를 따라 머릿속 형광펜을 밝혀보자.


 음악을 듣는 당신에게 커다란 별이 빛을 밝히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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