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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Nov 16. 2020

나에게는 노래하고, 슬퍼하는 고릴라 인형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의도치 않게 블루스를 자주 즐겨 들었던 것 같다. 딱 한 곡을. 제목도 모르고, 가사도 모른다. 가끔 그 노래를 찾아보기를 평생 해왔는데 장르가 블루스였다는 것을 약 4년 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노래를 잊을 수 없었던 강력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도 했지만, 근육이 붙은 고릴라 인형게서 나오는 것이 때문이다. 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뭐, 대충 이런 인형 말이다. 출처- http://naver.me/Fn6we4Dv



 섹시한 근육을 가진 고릴라 인형을 뒤집으면 메인 전원이 있었고 전원을 켜면 열 두 마디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노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등장하므로 마치 '잭슨 파이브'의 노래 같은 느낌이었는데, 열두 마디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길이가 짧아 너무나도 감질나기 그지없는 노래였다. 나는 고릴라를 계속해서 노래하고 춤추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그 방법은 바로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외부 소리에 반응하는 센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수를 치면 노래하는 인형이라니. 그럼 나는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신나는 노래에 박수치 기를 멈출 수 없었다. 더불어 온몸을 흔들어 대는 댄스타임은 당연히 이어졌을 것이다.

 

단순하지만 흥겨운 음악, 춤과 박수를 이끌어내던 음악. 나의 첫 번째 블루스는 이런 의미였다.





추후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풋내 나는 어른이 된 나에게 두 번째 블루스가 찾아왔다.


신촌블루스 -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

https://youtu.be/WTJQ43nVQWY


 이 때도 블루스가 정확하게 뭔지 잘 몰랐으므로, 그저 전 남친(현재의 남편)의 감수성 가득한 노래 한 가락과 같은 느낌이었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한 끝의 바람만 불어도 상대를 가슴에 가득 품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노래 말이다.


블루스는 내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색채의 감정을 이미 폭넓게 아주고 있었다.





 군항지역이었던 뉴 올리언스에서 살던 흑인들은 자신들 주변에 널려있던 금관악기들을 연주하며 재즈를 확립해가던 반면,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강 유역에 살던 흑인들은 기타나 하모니카, 벤조와 같은 간단한 악기들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삶을 노래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는 '블루스'라는 장르로 발전되었다.


Robert Johnsom - Crossroad

https://www.youtube.com/watch?v=Yd60nI4sa9A

 초창기 블루스,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인 뮤지션 로버트 존슨.



  블루스는 12마디의 곡이다. 흔히 동요 작곡 시에도 가장 작은 단위는 16마디임을 고려하였을 때 블루스는 굉장히 심플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들은 본토에서의 춤과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애환을 녹여냈다. 고된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은 익숙한 리듬과 익숙한 멜로디 안에서 그들 본연의 참된 몸짓을 만날 수 있었다.



Eric Clapton - Got You On My Mind

https://www.youtube.com/watch?v=kFrhArymVcQ

 위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왠지 '밤이면 밤마다', 또는 '여행을 떠나요'가 떠오다.





항석과 부기 몬스터- 난 뚱뚱해

https://youtu.be/VxwprP-O0So


내게 세 번째 블루스가 되어준 새 노래.


세상이 정한 기준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기보다 스스로가 무엇에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노래이다. 결국, 블루스에는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본토'로 돌아가는 것. 내 본연의 몸짓을 취해보는 것. 내 마음을 잘 위로하고 아끼는 것. 과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본토를 잊지 않은 이들만이 가장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이다.


나를 잃고 그저 흘러가듯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내가 나 다운 게 뭐가 어때서! 내가 행복하면 뭐, 세상이 뒤집어지냐!'라고 외치고 싶어 졌다면 당장 그 세계의 문을 똑똑 두드려보자. 오늘은 바로 당신 마음속 작은 고릴라 인형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날 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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