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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n 21. 2016

그 시절 우리들의 장비, 잠자리채.

매년 이맘때 나는 너만 따라다녔었어!!

그 시절 우리들의 장비, 잠자리채.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아가는 잠자리를 보았다. 항상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고추잠자리나, 된장잠자리가 아니라 무려 '밀잠자리'였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면서 '우와!!'하고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고운 자태의 날씬한 밀잠자리. 오늘 너를 보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

 벌써 잠자리가 날아다닐 계절이 된 건가. 왠지 잠자리는 가을 추수 때 빨간 고추잠자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내 기억 속의 잠자리는 역시 여름부터 시작된다.

 나는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곤충을 잘 잡으러 다녔었다. 솔직히 좀 징그럽고 무서웠지만 친구들이 다 하는 거라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친하게 다녔던 친구들과 무슨 수색부대처럼 진지하고 신중하게 잠자리, 방아깨비, 매미 등을 찾아서 온 동네를 수색했고 마침 여리고 여린 실잠자리라도 만나면 두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내 손에 포개어 담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이게 이렇게 세트장비였다. 채집통과 잠자리채. 여름은 이것들로 충분했다.


 그러다가도 각기 키가 다른 철봉이 있는 모래바닥의 놀이터에 다다르게 되면 들고 있던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던져놓고 일단 '얼음땡'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열심히 했었다. 중간중간 놀다가도 채집통으로 와서 잠자리와 곤충들이 서로 싸우거나 잡아먹진 않는지 감시도 했었다. '사이좋게 놀아!!'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가 놀고 있는 놀이터의 하늘 위에서는 많은 잠자리들이 유연하고 여유롭게 날고 있었다. 그러면 순간 묘한 기분에 빠져 멍하니, 파란 하늘 위로 함께 보이는 초록 이파리와 함께 잠자리를 구경하며 누워있거나, 아예 더 잡고자 하는 마음에 불이 타올라서 온동네 잠자리를 다 잡아버리겠다는 식으로 잠자리채를 잡고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잠자리 잡기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요구르트 공병에 퐁퐁을 넣어 비눗물을 만들고, 빨대의 끝을 해바라기처럼 만들어오면 우리는 모두모여 비눗방울 더 크게 만들기에 열중하고, 친구가 불어주는 방울들을 터뜨리며 박수를 마구마구 쳐댔다. 그러다가 모두가 손에 비누 범벅이 되면 그 비눗물을 고대로 모래에 부어 '엄마 아빠 놀이'를 시작한다. 비눗물로 인해 보드라워진 모래들을 뭉쳐 남편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주고, 살림을 만들고, 아이들 밥을 챙겨주었다. 그때의 엄마 아빠 놀이의 핵심은 모두가 함께 모여있다는 것이다. '여보 사랑해, 당신 사랑해, 아빠 사랑해, 동생 사랑해, 엄마 사랑해, 고마워, 너도 더 먹어' 반복의 놀이. 사랑표현의 놀이.





새삼스레 지나가다 본 잠자리 한 마리로 인해, 너무 많은 기분이 순식간에 떠올랐고 기분이 마냥 설레 댔다. 아마 그 잠자리를 본 순간 내 손에 잠자리채가 있었다면 아마 잠자리를 따라다니며 추억에 빠져 추억에 추억을 더한 하나의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잠자리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당장 나의 할 일이 더 중요하기에 그것들에 대해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생활이 얄궂기도 하면서도 그래서 추억은 추억인가 보다 생각이 들며 지나간 일들에 대해 떠오른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스스로 위로해본다. 올 해엔 잠자리가 만연한 시기가 되면 좋아하는 이와 함께 넓은 공원에라도 놀러 가 다시 잠자리채를 들고 온 공원을 활보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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