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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Jun 29. 2016

그 노을이 한결같아서 날 끌어당기더라고.

너와 다시 만나는 시간.

그 노을이 한결같아서 날 끌어당기더라고.


동네 치고는 꽤 아름답게 빛났던 저녁노을이었던걸로 기억해. 뜨겁지 않고 오히려 황홀하게 붉힌 그 노을 앞에서 그 때의 우리가 사진을 찍었었잖아. 기억나? 그 태양이 그저 아름다웠던건지 공간이 뻥 뚫린 조금 넓은 공간이라 그랬던건지.


어쨌든 어제 내가 그 쪽을 지나가는데 또 다시 물든 그 노을이 너무 한결같아서 날 자꾸만 보러오라고 끌어당기더라고. 뿌리칠 수 없이 정말 예쁘더라니까. 난 항상 그렇잖아? 거창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내 맘에 딱 드는 한가지 때문에 줄곧 생각나고 빠져들고 말야. 아, 어제 사진을 좀 찍어둘껄. 내가 항상 이렇다니까.


그리고 그 길의 어딘가즈음에 우리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공간을 만나고는, 휑한 길바닥을 괜시레 한참이나 쳐다봤어. 지금 나 혼자 여길 온게 기분이 묘해지더라고.


그 때 각각 우리의 나이가 생각났고, 세상에서 녹차빙수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카페에서 녹차빙수를 사왔던게 생각났고, 뒷 배경에 함께 찍혔던 네 차가 지금은 바뀐게 생각났고, 나의 머리스타일이 그 땐  붉은 빛 도는 단발이었지만 지금은 갈색 숏컷으로 바뀐게 생각났고, 네가 셀카봉을 하도 높게 들고 찍어서 우리 다 진짜 못생기게 나왔었던것도 생각나잖아 바보야. 아주 넙대대하고 희안한 눈빛을 하고 말이야. 셀카봉은 촬영을 잘 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지 못생기게 찍으려는게 아니라고. 그러고보니 난 원래 태양을 마주보면 너무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나는데 그래선지 눈빛이 좀 이상하더라고. 하여간 제대로 나온 사진이 하나도 없었어. 난 그때 네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었는데 보람도 없이. 칫.

아무튼 그 때의 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 그리고 너에게 종알종알 떠들고 싶었는데 그 때와는 또 다르게 많이 바빠진 너를 방해하긴 너무 미안하더라고. 헤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생각보다 길어서 사실 기억하는 것보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거야. 우리 둘 다 기억력이 좋지가 않아서. 그래도 가끔 이렇게 그 추억들이 우릴 불러. 함께 있을 때도, 떨어져 있을때도, 그렇게 또 생각나고 만나면 추억에 추억이 쌓이고, 그런 시간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들이 있겠지. 난 기대하고 있고, 그 시간들을 끊임없이 진심으로 사랑해. 아주많이.

그래서 더 오래 계속 같이하고 싶어.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나이를 더 먹고 아이가 생기고 키우다가 늙어서 힘이 없어져도 또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있겠지. 같이 해줄거지? 대답을 듣지 않아도 난 다 알아. 다가올 너와 만날 날이 기다려져. 날아 빨리와라 그리고 너도 어서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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